세월이 빚어낸 원림(園林), 명옥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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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옥헌>


여름 담양

 

여름은 몹시도 가혹한 계절이다. 여름의 폭염은 이 세상 모든 생물에게 지극히 원초적인 존재의 몸짓만을 허락한다. 한여름 폭염 속에서 모든 생물은 삶을 경영할 수 없고 오직 삶을 유지할 뿐이다. 당연히 그 속에서는 아름다움이나 정겨움이나 신선함 따위를 찾기 힘들다. 서문이나 서론 같은 건 아예 필요 없고 오로지 간단명료한 본론과 결론만 강요하는 계절이 바로 여름인 것이다.

한여름의 이런 가혹한 환경은 식물에게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여름의 식물은 그저 성장하고 증식하는 일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사람들에게 그 아름다움이나 넉넉함을 베풀지 않는다. 여름꽃을 보라. 대개의 여름꽃들은 너무 펑퍼짐하고 원색적이어서 도무지 은근한 아름다움을 찾아보기 힘들다. 은근한 아름다움은커녕 오히려 나태하고 방만하고 심지어 천박해 보이기까지 한다. 사내의 마음을 조용히 설레게 하는 단정한 규수의 모습이 아니라, 덕지덕지 싸구려 화장을 하고 언제든 치마를 걷어올릴 태세인 발정난 여인네가 떠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느낌은 다분히 주관적이긴 하다. 여름꽃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하지만 내가 세상을 더 살아보면 혹 달라질까 아직 여름꽃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여름꽃이 있다. 화사하되 천박하지 않고, 밋밋하되 은근한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무더기로 피어나되 홀로 단정할 줄 아는 꽃, 바로 담양 땅을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배롱나무꽃이다. 흔히 담양을 대나무의 고장으로 알고 있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시원한 바람이 대숲을 흔들며 달려와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는 계절은 봄과 가을이다. 여름 대숲은 너무 눅진하고 또 모기가 극성을 부려 선뜻 발을 들이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대나무는 담양의 봄 가을 상징하는 나무이고 담양의 여름을 대표하는 나무는 배롱나무라고 해야 옳다. 실제로 담양에서는 어디에서나 지천으로 배롱나무를 볼 수 있다. 이런저런 정자 주변은 물론이고, 읍내를 벗어나면 가로수까지도 배롱나무이다. 분홍빛 작은 꽃무더기를 피워내는 배롱나무가 한여름이면 담양 땅을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이는 것이다. 이 아름다움의 절정을 이루는 곳이 바로 명옥헌이다. 유명한 담양의 정자문화권에서 살짝 비켜앉아 장구한 세월 동안 은근한 아름다움을 지켜온 곳, 그래서 그 이미지가 배롱나무꽃을 꼭 닮은 듯한 느낌이 드는 곳이 담양의 명옥헌이다. 나는 이런 명옥헌이 좋다. 세간의 칭송이 자자한 이웃의 소쇄원보다도 수수하고 담백한 명옥헌이 더 좋다. 그러니 8월이 되면 분홍빛 배롱나무꽃 활짝 핀 명옥헌이 무시로 떠올라, 마음만으로라도 담양 땅을 기웃거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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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옥헌>

 

명옥헌


명옥헌(鳴玉軒)은 오이정이라는 사람이 1600년대에 아버지 오희도를 기리는 의미로 세운 정자이다. 오희도나 오희정은 기록도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초야에 묻혀 살았던 사람들이다. 오희도가 인조 1년에 알성시에 합격에 예문관의 관원이 되었다는 기록이 전부이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반정을 준비하던 인조가 오희도를 세 번 찾아왔었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진위를 확인하기 힘들다. 이 정도가 명옥헌의 사료이다. 사료에서는 큰 의미를 찾기 휨들지만 명옥헌의 풍모는 그렇지 않다. 명옥헌의 생김새를 살펴보자.

명옥헌은 나지막한 호봉산 기슭에 자리잡은 단순하고 소박한 정자이다. 정자 앞에 작은 연못이 하나 있고, 그 연못 주변에 배롱나무와 소나무들을 거느리고 있다. 정자는 긴 건물 형태로 가운데 방을 들인 전형적인 호남식 정자이다. 연못은 흔히 볼 수 있는 원도방지형(圓島方池型)으로, 사각형의 연못 가운데 둥근 섬이 있고 그 섬에도 역시 배롱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명옥헌은 주변에 나무가 많아 자연 정원이라는 뜻의 원림(園林)이라 부르기도 한다. 명옥헌의 외관에 대한 개괄적 설명 역시 이 정도면 족하다. 그렇다면 이렇듯 단순하고 소박한 정자가 왜 이리도 사람의 마음을 끄는 걸까? 이제 명옥헌의 숨은 매력을 찾아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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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옥헌>

 

명옥헌은 은근하고 담백해서,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그냥 스쳐 지나기 십상인 곳이다. 그러나 명옥헌을 두번 세번 찾아본 사람들은 뜻밖의 매력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 느낌이 아주 막연해서 명옥헌의 매력을 꼭 집어내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나 역시 그랬다. 담양 땅의 두 미스터리가 소쇄원과 명옥헌이었다. 소쇄원은 왜 그리도 큰 칭송을 받는가? 반면에 명옥헌은 왜 그리 버려진 듯 쓸쓸할까? 내가 느끼는 그 막연한 명옥헌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내게는 풀어내기에 쉽지 않은 문제였으므로, 나는 한동안 이 문제로 상당히 고민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제 내 나름대로 명옥헌의 매력을 정리하고 있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명옥헌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스러움에 있다. 어떤 이는 명옥헌이 원림은 아니라고 말한다. 일부러 연못을 파고 섬을 만들고 나무를 심었으니 원림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림(園林)이란 일본의 정원(庭園)과 비교되는 우리나라의 전통 조경 방식으로, 인위적으로 가공되는 일본의 정원과는 달리 자연 그대로를 조경으로 삼는 방식이다. 건물 주변에 아름다운 경관을 꾸미는 것이 일본의 정원이라면, 경관이 빼어난 곳에 건물을 들이고 그 경치를 감상하는 것이 우리의 원림인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말이 차경(借景)이라는 말로, 뜻 그대로 경치를 빌린다라는 말이다. 이 차경의 개념이 우리 전통 정자의 방식이었다. 그러니 연못을 파고 섬을 만든 명옥헌은 원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명옥헌이 자연스럽다는 말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연못을 파고 나무를 심었지만 이미 3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300년이 넘는 그 긴 세월이 바람과 비와 햇살을 바꿔가며 명옥헌을 어루만졌다. 그 결과로 연못의 석축은 허물어지고 조경수와 잡목의 구분이 사라졌다. 이제는 석축이 무너져 물과 땅의 경계도 분명치 않아 풀이 연못으로 흘러들고, 조경수와 잡목은 자연의 순리를 따라 모두 제 자리에서 그대로 또 하나의 경관이 되었다. 300년의 세월이 인공적인 경관을 다시 자연의 경관으로 되돌린 것이다. 명옥헌은 분명 인공적인 조경이었지만 긴긴 세월의 흔적으로 이제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니 이제 명옥헌을 원림이라 부르지 못할 이유는 없다. 명옥헌은 자연 그대로의 원림은 아니지만 세월이 빚어낸 아주 자연스러운 원림인 것이다. 이 자연스러움 앞에서 사람들은 지극한 편안함을 느낀다. 소쇄원의 강파른 기개 앞에서는 왠지 모르게 주눅 드는 듯한 불편함이 느껴지지만, 명옥헌의 자연스러움 앞에서는 늘 편안하기만 하다. 이 세월이 빚어낸 자연스러움이 명옥헌의 가장 큰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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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옥헌>


명옥헌의 매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세월이 흘렀다고 모든 것이 다 자연스러워지는 것은 아니다. 명옥헌이 세월의 숨결로 자연스러워질 수 있었던 것은 명옥헌 자체가 본래 열려 있었고 또 겸손했기 때문이다. 사실 명옥헌은 연못까지 다 합해도 채 천 평이나 될까 싶을 정도로 그리 큰 편이 아니다. 당연히 명옥헌의 이미지도 그리 크진 못하지만, 마음 속에 떠오르는 명옥헌의 오브제는 한없이 크기만 하다. 이는 명옥헌이 완전하게 개방되어 있기 때문이다. 담장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 풍경을 제압하려 들지도 않고 또 주변 풍경 속에서 홀로 돋보이려 들지도 않는다. 그럼으로써 명옥헌의 자연스러움은 주변 풍광 속으로 부드럽게 스며들 수 있었고, 그 개방성과 확산성이 명옥헌의 오브제를 한없이 크게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원림인 소쇄원은 담장을 쌓고 또 담장 안팎의 분위기를 이질적으로 만듦으로써 스스로 그 개방성을 막았다. 자연을 수용했다고 하지만 어찌 보면 담장 안에 자연을 가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소쇄원이 명옥헌보다 훨씬 규모가 크지만 그리 큰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지만 개방된 명옥헌이 소쇄원보다 훨씬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다. 주변으로 스며드는 명옥헌의 자연스러움, 이는 명옥헌의 개방성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명옥헌의 매력이 또 한 가지 있다. 바로 명옥헌의 겸손함이다. 명옥헌은 건물 자체도 그리 크지 않지만 전혀 위압적이지도 않다. 연못보다는 높은 자리에 앉았지만, 연못에 바싹 붙어 앉지도 않고 또 연못의 중심축에 버티고 서 있는 것도 아니다. 연못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그것도 연못의 중심축에서 살짝 비껴앉은 것이다. 이는 연못 뒤 왼쪽의 작은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사선의 자연스러움을 살리기 위한 자리 선택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명옥헌이 연못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또 중심축에서 벗어나 있기에 연못과 호명산 자락은 서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었고, 그 자연스러움이 사람의 시선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 또 마음의 편안함을 해치지 않는 것이다. 비록 차경을 하지는 못했지만 중심축을 자연에 내주고 한켠으로 비껴앉은 겸손함이 바로 명옥헌의 또 다른 매력이며, 또 명옥헌을 세운 오이정의 빼어난 안목을 반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당당함을 내세우고 호방함을 자랑하는 정자들도 많다. 그러나 당당함과 호방함은 자기 스스로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 오랜 세월을 견디며 명옥헌이 지금의 아름다움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명옥헌의 겸손함이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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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롱나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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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롱나무꽃>

 

명옥헌의 배롱나무꽃

 

이렇듯 은근하고 자연스러운 명옥헌의 아름다움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에 그 절정을 이룬다. 허물어져가는 연못 주변에 분홍빛 배롱꽃이 활짝 피어, 마치 분홍색 꽃구름이 내려앉은 듯하다. 마을길을 지나 그리 높지 않은 고개를 넘어서서 명옥헌이 한눈에 들어오는 순간 선계로 빠져드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나는 이슬비가 오락가락하던 날 이 아름다움과 만났다. 비 오는 날의 붉은색은 유난히 처연해 보인다. 그날의 명옥헌도 그랬다. 분홍빛 배롱꽃은 나뭇가지에도 지천이었고 또 연못의 수면 위에도 지천이었다. 나무 위에서 바람 따라 흔들리는 배롱꽃은 화사했지만 가녀렸고, 수면 위에서 물결 따라 흔들리는 배롱꽃은 화사했지만 처연했다. 그날 나는 자연의 아름다움도 전율처럼 다가올 수 있음을 알았다. 명옥헌에 머물던 짧은 시간에 나는 평정심을 잃고 몹시 당황했던 것 같다. 그 아름다움 앞에서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쩔쩔맸었다.

숨이 턱턱 막히고 머리가 멍해지는 한여름에도 아름다움은 있다. 내게 여름 풍경이 아름다운 다섯 곳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명옥헌을 그 안에 넣겠다. 누구든 배롱꽃 활짝 핀 명옥헌을 보았다면, 아마 숨이 다할 때까지 명옥헌을 잊지 못할 것이다. 여행을 좋아한다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곳이 8월의 명옥헌이다. 시간을 내서 명옥헌의 그윽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과 배롱꽃의 화사하면서도 은근한 아름다움을 마음껏 만끽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