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 송광사

-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행 사찰인 승보사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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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광사> 

 

전남 순천의 송광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삼보사찰 중의 하나입니다. 삼보(三寶)란 불가에서 보물처럼 소중히 여기는 세 가지로, 부처를 상징하는 불(), 부처의 말씀인 경전을 상징하는 법(), 부처님을 따라 수행과 중생을 구제하는 승()이 바로 삼보입니다.

삼보사찰(三寶寺刹)이란 삼보인 불(), (), ()의 특징이 각각 두드러진 사찰을 말합니다. 양산의 통도사는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어 법보사찰이 되었고, 합천의 해인사는 우리나라 최고의 경전인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있어 법보사찰이 되었습니다. 또 순천의 송광사는 고려 말 16명의 국사를 연이어 배출함으로써 승보사찰의 지위를 얻었습니다. 송광사는 큰 스님들을 많이 배출한 사찰로, 현재도 많은 스님들이 수행하고 있는 수행 사찰입니다.

 

송광사는 신라 말에 길상사라는 이름의 작은 사찰로 창건되었습니다. 당시는 조계산의 이름이 송광산이었다 하는데, 이 송광산 길상사에 대해서는 전해오는 내력이 거의 없습니다. 송광사가 지금 같은 거찰로 우뚝 서게 된 것은 고려 중엽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정혜결사 운동 이후부터입니다.

보조국사 지눌은 1182년 몇몇 스님과 뜻을 같이해 팔공산 거조사에서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시작했습니다. 결사란 잘못된 것을 바로잡자는 일종의 정풍 운동쯤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보조국사가 거조사에서 정혜결사를 시작하자 많은 스님과 대중들이 이에 동참했다고 합니다. 보조국사는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큰 절터를 찾다가 이곳 송광사 자리의 작은 절 길상사를 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197년부터 9년간 길상사를 중창해 거찰로 만들고 이름을 정혜사(定慧寺)로 바꾼 뒤 정혜결사를 이어갔습니다. 보조국사 지눌은 그후 국사(國師)의 자리에 올랐고, 그 뒤를 이어 송광사에서 계속 16명의 국사가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조국사의 제자였던 희종이 임금으로 등극하면서, 송광산을 조계산으로 또 정혜사를 수선사(修禪社)로 각각 이름을 바꾸어 조계산 수선사(曹溪山 修禪社)라는 현판을 하사했다고 합니다. 그후 다시 송광사(松廣寺)로 이름을 바꾸어 지금의 조계산 송광사가 되었습니다.

보조국사 지눌이 송광사에서 정혜결사 운동을 크게 일으킴으로써 송광사는 순식간에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고 또 그 뒤로 큰 스님들을 계속 배출해 당당히 승보사찰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송광사는 매표소를 지나 숲길을 따라 약 15~20분쯤 걸어 들어가야 합니다. 진입로는 그리 특징적인 점은 없습니다. 그러나 일주문 앞에 서면 우아한 풍경과 마주하게 됩니다. 길 양쪽에 아름드리 고목들이 호위하듯 솟구쳐 있어, ‘과연 송광사로구나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 일주문 앞과 우화루 주변이 송광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빚어내는 곳입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바로 경내로 들어서게 되지만, 일주문을 건너기 전에 일주문 왼쪽의 나무 다리로 올라서야 합니다. 다리에 올라 송광사 쪽으로 눈을 돌리면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집니다. 계곡 양쪽에 축대를 쌓아 은은한 수로를 만들었는데, 그 수로에 기둥을 세운 임경당과 다리 위에 누각을 얹은 누다리, 우화각이 있습니다. 우화각과 그 아래 홍예교가 잔잔한 수로에 그림자를 던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곳으로, 송광사를 사진에 담으려는 사람들이 빠짐없이 건져내는 풍경이 바로 이 장면입니다.

 

송광사는 수십 동의 전각을 품고 있는 큰 사찰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스님들의 수행공간이어서 여행자들이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여행자들에겐 아쉽지만 송광사는 승보사찰로 엄중한 스님들의 수행 도량이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여행자들이 송광사에서 눈 여겨 볼 건물은 대웅보전과 성보박물관입니다. 대웅보전은 1987년에 세운 건물로, 고건축의 전문가인 대목장 신흥수 선생과 문화재 전문가인 간송미술관의 최완수 선생이 참여해 세운 건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독특한 아()자형 건물로 화려하고 웅장한 느낌을 주는 건물입니다. ()자형 작은 건물들은 종종 볼 수 있지만 이렇게 큰 아()자형 건물은 보기 드뭅니다. 안에는 삼세불과 사대보살을 모시고 있습니다.

송광사 성보박물관에는 송광사에서 전해오는 문화재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목조불감, 경패, 금동요령 등 볼거리가 많아 한참을 돌아보게 되는데, 이 성보박물관에 송광사의 삼대 명물 중 하나인 능견난사가 있습니다.

송광사의 삼대 명물은 능견난사와 비사리구시 그리고 쌍향수입니다. 능견난사(能見難思)는 평범한 식기로 코펠에 들어 있는 접시와 비슷합니다. 이러 저리 포개 쌓아도 빈틈없이 꼭 겹쳐진다 해서 삼대 명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조선 숙종 임금이 능견난사와 같은 그릇을 만들라 명했는데 아무도 만들지 못했다고 합니다. 능견난사(能見難思)라는 이름도 이때 붙었는데, ‘볼 수는 있지만 그 이치를 생각하기는 어렵다는 뜻입니다.

비사리구시는 싸리나무로 만든 구시입니다. 구시란 스님들의 밥을 퍼 놓았던 용기로, 여물통처럼 통나무를 잘라 속을 파낸 것입니다. 비사리구시는 본래 남원에 있던 큰 싸리나무였는데 벼락을 맞아 쓰러진 것을 송광사로 옮겨 구시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비사리구시는 싸리나무로 만들었다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큽니다. 한 번에 4,000명 분의 밥을 담는다는 말도 있고, 7가마 분의 밥을 담는다는 말도 있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우리나라 최대의 구시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구시가 컸다는 건 절에서 수행하는 승려들이 많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삼대 명물의 마지막은 쌍향수입니다. 쌍향수는 송광사의 암자인 천자암에 있는 두 그루의 향나무입니다. 두 그릇의 향나무가 바싹 붙어 서 있는데 곧게 솟아 있지만 껍질은 꽈배기처럼 감겨 있습니다. 이제는 노송이어서 껍질도 많이 벗겨진 상태입니다. 이 쌍향수는 보조국사와 그의 제자인 금나라의 천자가 지팡이를 꽃아 놓은 것이 향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천자암이 송광사에서 꽤 걸어 올라가야 하므로 이 쌍향수를 보기는 힘듭니다.

 

송광사는 승보사찰 답게 규모가 큰 사찰이지만 대부분이 스님들의 수행공간이어서 일반인들이 볼 수 있는 공간은 크지 않습니다. 대신 송광사를 찾을 때는 송광사에서 멀지 않은 불일암까지 돌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불일암은 이곳 송광사 출신인 법정스님이 머무시던 작은 암자이지만, 아늑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곳이어서 송광사의 아쉬움을 달래기에 넉넉한 곳입니다. 입장료는 어른 3,000, 학생 2,000원입니다.

 

송광사 : (061)755-0107/9, http://www.songgwangsa.org, 전남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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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량각. 송광사 진입로에 있는 계곡을 건너는 누다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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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광사 진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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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경당과 우화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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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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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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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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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사리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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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조국사 감로탑. 송광사를 일으킨 보조국사 지눌스님 부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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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광사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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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일암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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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일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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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암 쌍향수>      

 

 

대중교통

 

광주 금호터미널과 순천 버스터미널 그리고 순천역에 송광사로 가는 버스가 있습니다.

광주금호터미널 : (062)360-8114

순천 버스터미널 : (061)744-6565

순천역 : (061)733-3192

송광사 버스정류소 : (061)755-5338

 

 

주변 맛집

 

송광사 입구 상가단지에 식당들이 많이 있습니다. 딱히 맛집은 없는데 길상식당이 많이 알려진 식당입니다. 산채비빔밥과 산채정식 등을 내는 집입니다.

 

길상식당 : (061)755-2173, 전남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132-8,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