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해남 녹우당

- 남도 문화를 꽃피운 해남 윤씨의 종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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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우당> 

 

전남 해남의 녹우당은 해남 윤씨의 종택, 그러니까 해남 윤씨의 종가집입니다. 수많은 종가집이 있는데 해남 윤씨의 종택인 녹우당이 유독 유명한 것은, 해남 윤씨 집안에서 윤선도와 윤두서 등 역사적인 인물을 배출했으며, 이 고택을 중심으로 남도 문화가 꽃 피었고 또 이 집안에 전해오는 유물들이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기 때문입니다.

 

해남 윤씨가 해남에 자리를 잡은 건 해남 윤씨의 중시조인 어초은 윤효정이 지금의 녹우당 자리에 터를 잡으면서부터라고 합니다. 윤효정은 당시 해남의 거부였던 해남 정씨의 외동딸과 결혼해 해남 정씨의 재산을 물려받아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 힘을 쏟아 적선지가(積善之家)’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후 윤효정의 4대 손으로 고산 윤선도가 태어났습니다. 윤선도는 오우가’, ‘어부사시사등의 시조를 남긴 문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윤선도는 대쪽 같은 성격의 남인 세력의 거두로 끊임없이 당쟁에 휘말려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냈던 인물입니다.  

82세 때인 1668, 수원에 있던 사랑채 건물을 해남 본가에 옮겨 다시 세웠는데 이 사랑채 건물이 바로 녹우당입니다. 수원에 있던 집은 효종 임금이 자신의 스승이었던 윤선도에게 지어준 집이었다고 합니다. 임금이 하사한 집이니 함부로 팔거나 버릴 수 없어, 사랑채 건물을 해남으로 옮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윤선도는 해남에서 그리 많은 시간을 보내진 않았습니다. 윤선도가 녹우당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녹우당을 윤선도의 생가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윤선도의 아버지는 둘째아들로 서울에서 살았고 윤선도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장손이었던 큰아버지가 아들이 없자, 윤선도가 8세 때 큰아버지의 양자로 들어가서 해남 윤씨의 종손이 되었습니다.

윤선도는 생애 대부분을 서울과 귀향지에서 보냈고 또 자신이 만든 보길도의 부용동에서 보냈습니다. 녹우당에 머문 기간은 고작 6년 정도라고 합니다. 윤선도는 해남에 머물 때도 녹우당이 아닌 금쇄동이란 곳에 원림을 조성하고 그곳에 주로 머물며 시조 작품을 남겼다고 합니다. 윤선도의 묘도 이곳 금쇄동에 있습니다.

 

해남 윤씨의 큰 인물인 공제 윤두서는 윤선도의 증손자로 태어났습니다. 윤두서는 26세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에 뜻을 버리고 학문과 글과 그림에 정진했던 인물입니다. 그가 대표작인 자화상은 국보 제240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녹우당에 보관되고 있습니다. 윤두서는 특히 인물화와 말 그림에 탁월한 솜씨를 보였고, 그의 아들과 손자도 그림에 뛰어나 많은 그림을 남겼습니다.

윤두서는 성호사설을 쓴 성호 이익 집안과의 교분이 두터웠는데, 성호 이익의 동생이자 동국진체의 창시자인 옥동 이서가 녹우당에 내려와 사랑채에 녹우당이란 이름을 짓고 지금의 녹우당 현판을 썼다고 합니다. 또 윤두서의 손녀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어머니로, 정약용이 강진에서 유배 기간에 머물렀던 다산초당도 해남 윤씨 집안의 집이라고 합니다.

 

녹우당에는 윤선도의 육필 책자를 비롯해 윤두서의 그 자손들 그리고 옥동 이서의 글씨와 그림들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모두 소중한 문화재로 녹우당 입구의 고산윤선도 유물전시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녹우당은 이렇게 큰 문화적 업적을 보관하고 있어, 훗날 초의선사는 녹우당의 화첩을 빌려 소치 허련에게 그림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녹우당 뒷산인 덕음산은 비자나무숲으로 유명합니다. 이 비자나무숲은 해남 윤씨의 중시조인 어초은 윤효정이 처음 심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뒷산의 바위가 보이면 마을이 가난해진다는 윤효정의 유훈에 따라 해남 윤씨 집안에서 계속 산에 비자나무를 심고 가꾸어왔다고 합니다. 비자나무숲은 다른 활엽수가 함께 섞여 있는데, 비자나무숲 속 가파른 길을 꽤 올라가야 숲을 다 볼 수 있습니다. 전하는 말로는 녹우당(綠雨堂)’이란 당호도, 이 비자림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마치 초록 비가 내리는 소리와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설이 있습니다.

 

녹우당을 돌아보는 순서는 먼저 고산윤선도 유물전시관을 보고 녹우당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고산사당과 어초은사당 앞을 지나 해남 윤씨의 제각인 추원당을 보고, 어초은 묘 옆으로 산길을 따라 올라가 비자나무숲을 보면 됩니다. 모두 돌아보는 데 약 2시간 반 정도가 소요됩니다. 입장료는 어른 1,000, 어린이 700원이며, 녹우당은 문이 잠겨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녹우당 : (061)533-4445,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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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물전시관. 녹우당 아래에 있는 유물전시관은 녹우당을 돌아볼 때 꼭 보아야 할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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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우당. 녹우당 앞에는 커다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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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우당. 이 건물이 이 집의 사랑채인 녹우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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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산사당. 녹우당 뒤로 윤선도 선생을 모시는 고산사당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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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원당.  해남 윤씨 집안의 제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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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자림. 비자림으로 올라가는 길은 좀 가파른 구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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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자림>    

  

 

주변 맛집

 

녹우당 주변에는 식당이 없습니다. 녹우당에서 멀지 않은 해남읍내에서 식사를 해야 합니다. 해남에는 한정식으로 유명한 한성정(80,000, 100,000, 120,000원 상이 있습니다)과 떡갈비정식(1인분 25,000)으로 유명한 천일식당 그리고 해물탕( 50,000, 60,000)으로 유명한 용궁해물탕이 있습니다. 그리고 원조장수통닭은 닭코스요리(50,000)가 유명합니다. 닭주물럭, 닭똥집, 닭발, 백숙 등이 나오는 음식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집입니다. 백포식당은 갈치찜(12,000)과 연포탕(13,000)을 잘하는 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성정 : (061)536-1060, 전남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 337-1

천일식당 : (061)535-1001, 전남 해남군 해남읍 읍내리 34

용궁해물탕 : (061)535-5161, 전남 해남군 해남읍 평동리 171-37

원조장수통닭 : (061)535-1003,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433-6

백포식당 : (061)536-3449, 전남 해남군 해남읍 해리 298-3

 

 

대중교통

 

해남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가 해남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녹우당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