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의 사당, 종묘(宗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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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묘 정전> 

 

1. 종묘란?

 

종묘(宗廟)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왕실 사당으로, 단아하면서도 장엄한 조선의 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1394 10월 한양 천도를 단행한 뒤 두 달 뒤인 그해 12월부터 경복궁과 종묘 그리고 사직단 창건 공사를 동시에 진행해, 그 이듬해 9월 경복궁과 종묘를 완성했습니다. 종묘의 정전을 완공한 뒤 자신의 4대조까지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를 왕으로 추존해 그 신주를 종묘에 모셨습니다. 그후 세종 때 영녕전을 세워 정종과 4대 추존왕의 신위를 영녕전으로 옮겼습니다. 종묘는 임진왜란 때 불 타 없어졌다가 1608(광해군 원년)에 중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재 정전(국보 제227) 19칸으로 19명의 왕과 30명의 왕후의 신주를 모시고 있고, 영녕전(보물 제821) 16칸으로 15명의 왕과 17명의 왕후 그리고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영친왕 부부의 신위를 모시고 있습니다.

 

(1) 종묘사직 (宗廟社稷)

 

종묘는 왕실의 사당이고 사직은 땅의 신인 사()와 곡식의 신인 직()을 함께 이르는 말입니다.

조선은 농경 중심의 유교 사회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리학에 입각해 조상을 모시는 종묘와 농사를 관장하는 사직신을 모시는 사직단이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종묘사직이란 말은 곧 나라의 운명과 같은 뜻으로 쓰였습니다. 사극에서 가끔 나오는 대사 폐하, 종묘사직을 지키시옵소서라는 말은 나라의 근본을 지키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종묘사직을 줄여서 종사(宗社)라 하기도 합니다. 사직단은 본래 사직공원 자리에 있던 것을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사직단을 헐고 공원으로 만들었던 것을 최근에 다시 복원했습니다.

 

(2) 종묘제례(宗廟祭禮)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종묘에서 왕실의 조상들에게 지내는 제사로 종묘대제(宗廟大祭) 또는 대제(大祭)라 부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종묘에서 정시제와 임시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정시제는 매년 정기적으로 지내는 제사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첫 달인 1, 4, 7, 10월에 한 번씩 그리고 섣달인 12월에 한 번을 지내 모두 다섯 번의 정시제를 지냈습니다. 임시제는 나라에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을 때 부정기적으로 지내던 제사였습니다. 현재도 종묘에서 종묘대제를 지내는데,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한 번만 지내고 있습니다. 대제의 절차는 신을 맞아들이는 영신(迎神)과 신에게 음식을 바쳐 신을 즐겁게 하는 진찬(進饌), 신에게 술을 올리고 축문을 읽는 헌례(獻禮) 그리고 신을 보내드리는 송신(送神)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대제를 진행하는 동안 대제를 장엄하게 꾸미기 위해 기악과 노래 그리고 춤이 펼쳐지는데 이를 종묘제례악이라 합니다. 종묘제례악은 세종 때 완성되었으며 그후 약간의 추가가 이루어졌을 뿐 큰 변화는 없었다고 합니다. 거의 500년 전의 기악과 노래, 춤이 전해져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래된 제례와 음악이 전해오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2. 종묘의 부속 전각들

 

(1) 외대문(外大門)

 

외대문은 종묘의 정문으로 창엽문(蒼葉門)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 크지 않고 단순하며 소박한 삼문(三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단청 등 장식을 피하고 단정한 느낌을 주는 것이 종묘 건물들의 특징입니다. 이는 종묘가 제례를 위한 공간이므로 화려함 대신 단순함과 엄정함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외대문은 평지보다 좀 높게 자리잡아서 계단을 통해 오르게 되어 있었는데, 일제시대에 도로를 내면서 도로가 높아져 계단이 묻혔다고 합니다. 정문 밖에는 하마비(下馬碑)와 왕이 마셨다는 우물인 어정(御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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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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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대문 밖 하마비>  

 

(2) 삼도(三道)

 

정문을 지나면 편평한 돌인 박석을 깔아 길을 만들었는데 이 길이 삼도입니다. 이 길은 세 단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가운데가 높고 양쪽이 낮습니다. 가운데 높은 길이 신향로(神香路)로 신이 다니는 길이고, 오른쪽이 임금이 다니는 어로(御路), 왼쪽이 세자가 다니는 세자로(世子路)입니다. 신향로는 조상과 관련된 것들, 즉 신주나 향(), (), () 등을 옮길 때 쓰였던 길입니다. 신향로와 어로는 어숙실 앞에서 갈라져서 신향로는 정전의 정문인 남문으로 이어지고 어로와 세자로는 어숙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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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도> 

 

(3) 중지당(中池塘)

 

정문을 지나 바로 만나게 되는 연못이 중지당인데 지당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사각형의 연못과 가운데 둥근 섬을 만든, 전형적인 원도방지(圓島方池)형 연못입니다. 이 원도방지형 연못이 우리나라 고유의 연못 형태로, 사각형 연못은 땅을 상징하고 둥근 섬은 하늘을 상징해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이라 합니다. 종묘라는 제례 공간의 특성에 따라 연못에 연꽃 등을 심지 않았으며 물고기를 키우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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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지당> 

 

(4) 망묘루(望廟樓)

 

망묘루는 제례 때 왕이 휴식을 취하는 곳입니다. 망묘루라는 이름은 종묘를 바라본다는 뜻으로, 휴식을 취하는 왕이 종묘를 바라보며 선왕의 은덕과 종묘사직을 생각한다는 의미라 합니다. 종묘 건물 중 유일한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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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묘루> 

 

(5) 공민왕 신당

 

공민왕 신당은 고려 공민왕의 제를 올리는 곳입니다. 공민왕과 왕비인 노국공주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옆 벽에는 준마도가 있습니다. 공민왕은 고려 말기의 왕으로 조선의 건국 세력인 이성계와 신흥사대부들을 등용했던 왕입니다. 이런 까닭에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신흥사대부들이 종묘를 세우면서 공민왕의 은혜를 기리는 뜻으로 공민왕의 사당을 세운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종묘를 세울 때 큰 회오리바람이 불더니 공민왕의 영정이 종묘에 떨어져, 이성계와 신하들이 논의한 끝에 그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공민왕 신당을 지었다고 합니다. 매년 공민왕 추모회라는 단체에서 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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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민왕 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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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민왕 신당 내부>

  

(6) 향대청(香大廳)

 

향대청은 제례 때 사용하는 향축폐(香祝幣)와 제사 예물을 보관하고 제례에 참가할 헌관들이 대기하는 곳입니다. ()이란 제사 때 피우는 향이고, ()이란 제사 때 읽는 축문입니다. ()란 폐백(幣帛)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제사 때 바치는 천을 말합니다. 제사 마지막에 축문과 폐를 태우는 것으로 종묘대제가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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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대청> 

 

(7) 어숙실(御肅室)

 

어숙실은 제례를 앞둔 왕과 세자가 목욕재계하고 의복을 정제하는 등 제사 준비를 하던 곳으로 재궁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임금이 머물던 어재실과 세자가 머물던 세자재실, 목욕을 하던 목욕청, 제관이 머물던 예재실 등이 있습니다. 왕은 제례 하루 전에 이 어숙실로 와서 경건한 마음으로 제례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정문에서 이어지는 삼도 중 어도와 세자도가 이 어숙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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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숙실> 

 

(8) 판위대(版位臺)

 

어숙실에서 제례 준비를 마친 왕과 세자는 어숙실의 서문을 나서 어로를 따라 정전의 동문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때 임금과 세자는 동문 앞 판위대에서 잠시 예를 갖추고 정전으로 들어갑니다. 임금은 전하판위(殿下版位) 위에 서고 세자는 세자판위(世子版位) 위에 서서 예를 갖추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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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위대> 

 

(9) 전사청(典祀廳)

 

평상시에는 제례에 쓰일 제물과 제기 등 제사 도구들을 보관하고, 제례가 있을 때는 제사 음식을 만드는 곳입니다. 전사청에는 돌 판이 두 개 있습니다. 큰 돌판은 찬막단(饌幕壇)으로 이곳에 천막을 치고 제사에 쓰일 음식을 검사하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작은 돌판은 희생대(犧牲臺) 또는 생성대(牲省臺)라 불리는데, 제사에 쓰일 소와 양 그리고 돼지의 상태를 검사하던 곳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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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사청> 

 

(10) 악공청(樂工廳)

 

대제 때 악공들이 머물던 건물로 정전과 영녕전 밖에 하나씩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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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공청> 

 

(11) 수복방과 제기고

 

수복방은 수복들이 머물던 건물입니다. 수복이란 종묘나 왕릉을 관리하던 사람을 이르는 말입니다.

제기고는 평시에 제사에 쓰는 제기를 보관하던 건물입니다.

 

(12) 제정(祭井)

 

제정은 제사에 사용되는 물을 긷던 우물입니다.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 우물이라 전해집니다.

 

 

3. 정전(正殿)

 

정전은 역대 조선 왕과 왕비들의 신주를 모신 곳으로 국보 제227호입니다. 넓은 월대 위에 세워진 건물로 신주를 모신 열아홉 칸의 신실(감실이라고도 함)이 있고, 양쪽 끝에는 협실과 협실 앞으로 월랑이 나와 있습니다. 월대 중앙에는 신향로가 나 있으며, 동쪽 월랑 계단 소맷돌에는 구름 문양이 새져져 있습니다. 이는 정전이 하늘의 공간이라는 의미인데 감실 안에도 구름 문양을 새겨 놓았다고 합니다. 이런 까닭에 감실을 운궁(雲宮)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태조가 처음 정전을 지었을 때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으나 그후 점차 증축을 거듭해 현재의 규모가 되었다고 합니다.

정전은, 서쪽을 높은 곳으로 두어 서쪽 첫번째 신실에 태조의 신위를 모시고 차례로 3대 태종, 4대 세종, 7대 세조, 9대 성종, 11대 중종, 14대 선조, 16대 인조, 17대 효종, 18대 현종, 19대 숙종, 21대 영조, 22대 정조, 23대 순조, 문조, 24대 헌종, 25대 철종, 26대 고종, 27대 순종의 순으로 신위가 모셔져 있습니다.

이 정전에서 종묘제례가 진행됩니다. 제를 올릴 때는 세 번 술을 올리게 되는데 이를 헌작(獻爵)이라 하고, 술을 올리는 사람을 헌관(獻官)이라 합니다. 왕이 제를 올릴 때는 왕이 직접 처음 헌작하는 초헌관이 되고 세자가 두번째로 헌작하는 아헌관, 영의정이 세번째로 헌작하는 종헌관이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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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전> 

 

문조

추존왕으로 순조의 아들이자 헌종의 아버지였던 효명세자입니다. 헌종이 익종으로 추존했다가 고종이 문조로 묘호를 바꾸었습니다.

 

묘호(廟號)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승하하면 궁에서 약 3개월에서 5개월 정도의 장례 절차를 치렀다고 합니다. 그후 능지에 장사 지냈습니다. 그러나 장사를 지낸 후에도 궁에서 신주를 모시고 3년상을 치렀습니다. 이렇게 3년상을 치른 후 왕의 위패를 종묘로 옮겨 종묘에 모셨다고 합니다. 이때 종묘에서 그 신주를 부르는 이름을 정해야 했는데 이 이름이 바로 왕의 묘호입니다. 묘호를 붙일 때는 신료들이 그 왕의 업적을 평가하여 공이 많으면 조()를 붙이고, 덕이 많으면 종()을 붙였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조()와 종()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1) 공신당(功臣堂)

 

정전 월대 아래 동쪽에 있는 공신당은 역대 왕조 공신들의 위패를 모신 곳입니다. 임금이 승하하면 그 임금 때 큰 공을 세우고 죽은 신하들의 위패를 이 공신당에 모셨는데 이들을 배향공신이라 합니다. 배향공신에 선정되는 것은 왕과 함께 모셔지게 되는 영광으로 사대부 최고의 영예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배향공신 선정이 그리 공정하지는 못해서, 후대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정되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 단적인 예로 태조 이성계 최고의 공신인 정도전이나 세종 때의 충신 김종서도 공신전에 배향되지 못했습니다. 현재 공신전에는 역대 왕의 공신 83위가 모셔져 있으며 그 명단은 아래와 같습니다.

 

태조 - 조준, 의안대군, 남재, 흥안군, 이지란, 남은, 조인옥

정종 - 이방의

태종 - 하륜, 조영무, 이천우, 이래

세종- 황희, 최윤덕, 허조, 신개, 이수, 양녕대군, 효령대군

문종- 하연

세조- 권람, 한확, 한명회

예종- 박원형

성종- 신숙주, 정창손, 홍응

중종-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 정광필

인종- 홍언필, 김안국

명종- 심연원, 이언적

선조- 이준경, 이황, 이이

인조- 이원익, 신흠, 김류, 이귀, 신경진, 이서, 능원대군

효종- 김상헌, 김집, 인평대군, 민정중, 민유중

현종- 정태화, 김좌명, 김수항, 김만기

숙종- 남구만, 박세채, 윤지완, 최석정, 김석주, 김만중

경종- 이유, 민진후

영조- 김창집, 최규서, 민진원, 조문명, 김재로

장조(추존왕으로 영조의 아들이자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 - 이종성, 민백상

정조- 김진수, 유언호, 김조순

순조- 이시수, 김재찬, 김이교, 조득영, 은신군, 조만영

문조(추존왕으로 순조의 아들이자 헌종의 아버지인 효명세자)- 남공철, 김로, 조병구

헌종- 이상황, 조인영

철종- 이헌구, 익평군, 김수근

고종- 박규수, 신응조, 이돈우, 민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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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신당> 

 

(2) 칠사당(七祀堂)

 

정전 월대 아래 서쪽에 있는 건물로 7(七祀)에 제사를 올리는 곳입니다. 7사란 궁중의 신인 사명, 출입을 관장하는 호, 음식을 관장하는 주, 궁중 출입 담당의 국문, 상벌을 주관하는 태여, 도로의 행작을 관장하는 국행, 그리고 중류 신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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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사당> 

 

 

4. 영녕전(永寧殿)

 

영녕전은 종묘의 별묘(別廟)로 세종 때 건립되었으며 보물 제82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세종 원년에 2대 임금인 정종이 승하하자 정종의 신위를 모시는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정종은 당시 왕으로 인정을 받지 못해 묘호도 받지 못하고 죽은 뒤에도 공정왕이라 불렸습니다. 이 정종을 정전에 모시는 것이 문제가 되자 세종은 별묘인 영녕전을 건립해 태조의 4대조 신위와 정종의 신위를 영녕전에 모셨습니다. 그 후 영녕전에는 추존왕의 신위 그리고 단명하거나 대가 끊기는 등 위상이 적은 왕과 왕비의 신위가 모셔졌습니다.

세종 때 처음 건립될 당시는 모두 6칸의 건물이었으나 점차 증측해 16칸이 되었습니다. 영녕전은 가운데 네 개의 신실을 크게 두고 양쪽에 작은 협실을 두었습니다. 가운데 큰 신실에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신위를 모시고, 서쪽 협실에 2대 정종, 5대 문종, 6대 단종, 덕종, 8대 예종, 12대 인종의 위패를 그리고 동쪽 협실에 13대 명종, 원종, 20대 경종, 진종, 장조, 영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있다.

 

덕종 : 세조의 맏아들인 의경세자로 훗날 그의 아들인 자을산군이 성종이 되어 왕으로 추존했습니다.

원종 : 선조의 다섯째 아들인 정원군으로 인조의 아버지입니다. 인조가 왕으로 추존했습니다.

진종 : 영조의 맏아들이자 사도세자의 형인 효장세자입니다. 죽은 뒤에 정조를 양자로 입적해 왕으로 추존되었습니다.

장조 : 영조의 둘째아들인 사도세자로 정조의 친부입니다. 정조가 즉위한 후 왕으로 추존했습니다.

영왕 : 고종의 일곱째 아들인 영친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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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녕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