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궁 역할을 했던 조선의 이궁, 창덕궁(2)

 

 

6. 후원 영역

 

성정각 담장을 따라 작은 언덕을 넘으면 창덕궁의 후원이 나옵니다. 창덕궁의 후원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잘 살린 아름다운 궁궐 정원으로 차례로 부용지, 애련지, 관람지, 옥류천 영역으로 구분됩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꾸며, 인공적인 아름다움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창덕궁 후원은 한때 비원(秘苑)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이는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부른 이름이고 정식 명칭은 창덕궁 후원입니다.

 

(1)부용지(芙蓉池)와 부용정(芙蓉亭)

 

창덕궁의 후원으로 접어들어 가장 먼저 만나는 연못이 바로 부용지입니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창덕궁의 후원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이 바로 이 부용지입니다. 부용지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의미인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사상에 맞춘 원도방지(圓島方地, 둥근 섬이 하늘을 상징하고 사각형의 연못은 땅을 상징)형 연못입니다. 연못 가운데 섬을 만들고 나무를 심었으며, 남쪽 석축에는 부용정이라는 자 형의 작은 정자가 있습니다. 부용정은 반은 연못에 반은 석축에 앉아 있는 연못으로, 부용지와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1795년 정조가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수원 화성에서 연 뒤 이곳에서 낚시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부용지 남쪽 언덕에는 3단의 화계를 조성해 돌화분인 석분을 놓았고, 부용지 서북쪽 호안에는 이무기 모양의 석물을 만들어, 부용지로 흘러드는 물이 이무기의 입을 통해 연못으로 흘러들게 만들었습니다. 또 연못의 동남쪽 모퉁이 석축에는 물 위로 튀어오르는 듯한 모습의 잉어가 부조되어 있습니다. 이는 잉어가 승천하여 용이 된다는 전설에 따른 것으로, 선비가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을 잉어가 용이 되는 것에 비유했던 데서 유래한 것이라 합니다. 잉어가 부용지에 세겨진 까닭은 이 부용지 옆 영화당에서 가끔 과거시험을 치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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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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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용정>  

 

(2) 주합루(宙合樓)

 

주합루는 1776(정조 원년)에 지은 2층 누각으로, 왕립도서관 격인 규장각의 서고로 쓰이던 건물입니다. 1층이 서고이고 2층은 열람실로 쓰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규장각은 단순한 도서관 기능에서 벗어나, 정조의 개혁 정책을 뒷받침하는 연구소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채제공, 이가환, 정약용, 박제가 등 당시 명성을 떨치던 실학자들이 모두 이곳 규장각 출신입니다. 주합루 현판 글씨는 정조의 어필이며, ‘주합루(宙合樓)’천지 우주와 통하는 집이란 뜻이라 합니다. ‘규장각(奎章閣)’이란 이름은 문장을 담당하는 하늘의 별인 규수(규숙)가 빛나는 집이란 뜻이라 합니다.

주합루의 문인 어수문(魚水門)은 작지만 화사한 형태의 문입니다. 어수문이란 이름은, 임금을 물에 그리고 물고기를 신하에 비유해 임금과 신하가 마치 물과 고기처럼 융화하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이 어수문은 임금만 지날 수 있는 문이었고 신하들은 옆의 작은 문으로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주합루에 설치되었던 규장각은 너무 좁아서 1781(정조 5) 궐내각사 지역으로 옮겼으며, 이곳에 보관되었던 책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경성제국대학을 거쳐 현재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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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합루와 어수문> 

 

(3) 영화당(暎花堂)

 

부용지 옆의 영화당은 1692(숙종 18)에 세워진 건물로, 왕과 왕실의 휴식을 위한 건물입니다. 그러나 영화당과 그 앞마당인 춘당대(春塘隊)에서 크고 작은 행사가 자주 열렸다고 합니다. 특히 이곳에서 과거시험이 가끔 열렸는데, 임금이 직접 참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영화당 현판은 정조의 어필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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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당> 

 

(4) 의두합(倚斗閤)

 

부용지를 지나 조금 더 걸어 들어가면 사각형의 연못인 애련지가 나옵니다. 애련지 못미처에 소박한 금마문이 나오고 이 문을 들어가면 왼쪽에 의두합이란 평범해 보이는 건물이 있습니다. 의두합은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가 세운 건물로, 효명세자는 이 의두합을 찾아 독서를 즐겼다고 합니다. 효명세자는 부왕 순조를 대신해 대리청정을 하며, 안동 김씨 세력을 견제하고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는 데 힘썼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대리청정 4년 만인 22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으며, 훗날 익종으로 추종되었습니다. 건물 이름은 의두합이지만 기오헌(寄傲軒)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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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두합> 

 

(5) 불로문(不老門)

 

금마문 바로 옆에는 불로문이 있습니다. 불로문은 큰 돌을 깍아 만든 문으로 임금의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애련지 바로 옆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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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로문> 

 

(6) 애련지(愛蓮池)와 애련정(愛蓮亭)

 

불로문 옆에 애련지라는 연못과 연못 가의 정자 애련정이 있습니다. 이 애련지와 애련정은 1692(숙종 18)에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숙종은 연꽃을 특히 좋아해서 이 연못을 파고 애련(愛蓮)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애련이라는 이름은 송나라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設)’이란 글에서 따온 것이며, 애련설은 군자의 도리를 연꽃에 비유해 표현한 유명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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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련지> 

 

(7) 연경당(演慶堂)과 선향재(善香齋)

 

애련지 안쪽으로는 일반 사대부 가옥을 연상시키는 집이 있습니다. 이 집은 1828(순조 28),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지은 집으로, 일반 궁궐 건물과는 달리 단청을 입히지 않은 소박한 형태의 한옥입니다. 구조도 일반 사대부 집의 형태를 따라 사랑채와 안채가 구분되어 있습니다. 이 집의 사랑채가 연경당이고 서재로 쓰이는 건물이 선향재이고, 대문이 장락문(長樂門)입니다. 궁의 후원에 사대부가의 집이 있는 것은 왕이 사대부들의 생활을 직접 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외에도 이 집에는 청수정사, 농수정 등의 부속 건물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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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경당> 

 

(8) 관람정(觀纜亭)과 관람지(觀纜池)

 

애련지에서 후원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한반도를 닮은 연못이 있습니다. 이런 형태 때문에 이 연못을 반도지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 연못의 이름은 관람지입니다. 관람지에는 관람정이란 독특한 정자가 있습니다. 관람정은 부채 모양의 지붕을 한 정자로, 나뭇잎 모양의 현판이 이색적입니다. 관람(觀纜)이라는 이름은 배의 닻줄을 본다는 뜻으로, 배를 띄우고 이를 본다는 의미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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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람지> 

 

(9) 승재정(勝在亭)

 

승재정은 관람정 건너편 언덕에 자리한 1칸짜리 작은 정자로, 숲속에 들어앉은 아늑한 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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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재정> 

 

(10) 존덕정(尊德亭)과 반월지(反月池)

 

관람지 북쪽에는 반월지라는 연못이 있고, 이 연못 남쪽에 겹지붕의 육각형 정자인 존덕정이 있습니다. 1644(인조 22)에 세운 정자로 처음에는 육면정(六面亭)이라 불렀다가 존덕정으로 이름을 고쳤다고 합니다. 존덕정의 천장은 정자처럼 육각형으로 되어 있는데, 황룡과 청룡이 여의주를 다투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존덕정에는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라는 글의 현판이 있는데 이 글이 정조의 어필이라 합니다. 과거에는 이 존덕정으로 건너가는 다리 남쪽에 일영대(日影臺)를 설치하여 시각을 측정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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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덕정과 반월지> 

 

(11) 폄우사(砭愚榭)

 

폄우사는 존덕정 서쪽에 자리한 작은 집입니다. 이 집은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자주 찾아 독서를 즐기던 곳이라 합니다. 폄우(砭愚)라는 말은 어리석음을 고친다라는 뜻으로 송나라 학자 장재의 좌우명이었다고 합니다. 장재는 서재 양쪽에 폄우(砭愚)’라는 글과 정완(訂頑)’이라는 글을 붙여 놓고 늘 자신을 가다듬었다고 합니다. 정완(訂頑)은 아둔함을 고친다는 뜻이라 합니다. 이 건물은 원래 자 모양이었는데 일부가 없어지고 지금은 자 형태만 남아 있습니다.

 

(12) 옥류천(玉流川)

 

존덕정에서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차가 다니는 길이 나옵니다. 이 길을 왼쪽으로 조금 가면 다시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나오는데, 이 길로 내려가면 옥류천이 있습니다. 옥류천은 후원 깊숙한 곳을 흐르는 실개울입니다. 1636(인조 14)에 큰 바위인 소요암을 깍아 물이 바위를 돌아 아래로 떨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과거에는 임금과 신하들이 이 물길에 술잔을 띄워 술을 마시며 시를 읊는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벌였다고 합니다. 유상곡수연이란 물길에 술잔을 띄워 보내면 그 술잔을 받는 사람이 시를 읊는 연회였다고 합니다.

소요암에는 인조의 어필인 옥류천(玉流川)이라는 글과 숙종의 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옥류천 부근에는 소요정(逍遙亭), 태극정(太極亭), 청의정(淸漪亭), 농산정(籠山亭), 취한정(翠寒亭) 등의 정자가 있습니다. 또 소요암 뒤에는 작은 샘이 하나 있는데 이를 어정(御井)이라 부릅니다. 이 샘의 물맛이 좋다고 하는데 이 샘의 물이 소요암을 타고 옥류천으로 흐릅니다. 현재는 돌 지붕으로 덮여 있는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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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류천> 

 

 

7. 기타 영역

 

(1) 성정각(誠正閣)

 

대조전 일원을 돌아나오면 왼쪽으로 바로 보이는 건물들이 성정각 일원입니다. 이 성정각은 본래 동궁전 영역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재는 동궁전이 제대로 복원되지 않아 원형이 아니라고 합니다. 일제시대에는 이 성정각 일원이 내의원으로 쓰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성정각 뒤 관물헌은 갑신정변이 일어난 곳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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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정각> 

 

(2) 낙선재(樂善齋)

 

성정각 동남쪽에 낙선재 영역이 있습니다.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가 있는데 이를 통칭해 낙선재라 부릅니다. 낙선재는 1847(헌종 13)에 세웠고 이웃한 석복헌과 수강재는 그 다음해에 세웠습니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로 쓰였고, 석복헌은 헌종의 후궁 경빈의 처소로 쓰였고, 수강재는 순조의 비였던 순원왕후가 썼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도 고종과 순종이 이곳에서 머물던 적이 있었고, 순종의 황후인 순정효황후가 낙선재에서 머물다 돌아가셨고, 1963년 일본에서 귀국한 영친왕과 그의 부인 이방자 여사가 낙선재에서 머물다 생을 마감했습니다. 또 고종의 고명딸이었던 덕혜옹주도 일본에서 귀국해 이곳 낙선재에서 머물다 1989년 숨을 거두었습니다. 화계와 꽃담, 문창살 등이 아름답다고 알려졌습니다. 낙선재 뒤쪽 언덕에는 상량정(上凉亭)이라는 정자와 행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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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선재> 

 

(3) 신선원전(新璿源殿)

 

옥류천에서 다시 큰길로 올라와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작은 고개를 넘어 정문인 돈화문으로 이어집니다. 이 길을 따라가면 길 오른쪽에 선원전이 있습니다. '선원(璿源)' '왕족의 계보'를 의미하는 말로, 선원전(璿源殿)은 임금님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건물입니다. 창덕궁의 선원전은 1656년에 인정전 서쪽에 지었는데 이를 구선원전이라 하고, 1921년 조선총독부에서 신선원전을 새로 지었습니다. 당시 구선원전에 있던 어진들을 모두 신선원전에 옮겼는데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옮겼다가 화재를 당해 모두 불 타 버렸다고 합니다.

신선원전이 있던 자리는 본래 대보단(大報檀)이 있던 자리라 합니다. 대보단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운 명나라의 태조와 임진왜란 당시의 황제 의종 그리고 마지막 황제 신종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제사를 올리던 단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이 대보단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신선원전을 지었습니다. 신선원전의 부속 건물로는 의로전(懿老殿), 제실(祭室), 수직사(守直舍) 등이 있으며, 괘궁정, 몽답정 등의 정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신선원전은 현재 일반인들에게 개방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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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선원전> 

 

(4) 창덕궁 향나무

 

신선원전을 나와 다시 돈화문 방향으로 내려가면 오래된 향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수령이 약 750년 정도로 추정되는데, 동궐도에도 그려져 있는 나무라 합니다. 주변에 제사를 지내는 선원전이 있어 선원전에서 쓰는 향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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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덕궁 향나무> 

 

(5) 궐내각사(闕內各司)

 

향나무를 지나 돈화문 방향으로 내려가면 금천교 옆에 많은 건물들이 보입니다. 이 일대가 궁궐 내의 관리들이 근무하던 궐내각사입니다. 현재 규장각, 검서청, 홍문관, 내의원 등이 복원되어 있는데, 아직 일반인들에게 관람을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