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으로 가는 길목, 설악산 백담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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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눈 쌓인 백담계곡을 걷고 왔습니다.

황태로 유명한 용대리에서 백담계곡을 따라 7km를 들어가면 백담사가 있습니다.

이 백담사까지 왕복 14km를 걸었습니다.

백담계곡은 계곡 양쪽으로 드센 산들이 솟아 있는 골 깊은 협곡입니다.

백담사로 가는 길은 이 협곡을 따라 이어지는 길로 다른 계절에는 셔틀버스가 다니죠.

겨울에는 셔틀버스의 운행도 중단되어서, 백담사로 가려면 이 길을 걷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예전부터 겨울이 되면 호젓하게 이 길을 걸어야지 생각했었는데 이제야 걸었습니다.

 

백담계곡은 이틀 전에 내린 폭설로 아직도 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포크레인이 들어와서 열심히 눈과 얼음을 긁어내고 있더군요.

백담계곡을 따라 백담사로 가는 길은 설경 속을 걷는 길이었습니다.

길에도 나뭇가지에도 계곡에도 모두 흰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습니다.

계곡의 여울 위로 떨어진 햇살은 유리알처럼 부서지고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의 눈이 거품처럼 폭 터지면서 눈 안개로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발 밑에선 뽀드득 뽀드득 눈길 다져지는 소리가 들리고

휑한 숲에서는 산새들이 시끄럽게 울어대더군요.

순백의 눈은 사람의 마음까지 깨끗하게 해주는 힘이 있는 모양입니다.

사람도 없는 길을 혼자 걷는 동안 어린애처럼 풍경에 환호하며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듯 걸었습니다.

내리막길에서는 부러진 나뭇가지 두 개로 썰매를 타기도 했네요.

그렇게 백담사로 들어가 찻집 농암실에서 대추차를 한 잔 마셨습니다.

대추차를 사발만한 질그릇에 가득 담아줘서 대추차가 점심이 되더군요.

나올 때는 들어갈 때와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길은 같은 길이지만 해가 이동해서 다른 빛의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깊은 산중의 겨울 해는 야박하기 짝이 없어서

높이 올라가지도 않고 움직여도 고작 한 뼘인데

그 작은 차이도 백담계곡에서는 큰 풍경의 차이를 만들더군요.

 

어제는 사실 몸이 좋지 않아서 무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백담계곡을 걷는 내내 마음도 즐겁고 몸도 가벼웠습니다.

백담사 앞에서는 더 걸어서 수렴동계곡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에 한참을 망설였으니까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몇 시간 전에 백담계곡을 걸었던 사실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더군요.

어제의 백담계곡은 그 정도로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백담계곡은 현실 세계를 벗어나 흰 눈 가득한 다른 세계로 향하는 길목 같았습니다.

어제는 제가 겨울 동화책 속으로 훌쩍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하루였습니다.

 

2월에 백담계곡 트레킹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 날도 꼭 어제만 같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