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여인들의 애환이 서린 절, 낙산 청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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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룡사> 

 

서울 동대문구의 청룡사는 낙산의 동쪽 기슭에 자리한 사찰로, 고려 태조 왕건이 도선국사의 뜻에 따라 922년에 세운 절이라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왕건은 청룡사를 세우고 비구니인 혜원에게 절을 맡겼다고 하니, 청룡사는 처음 창건했을 때부터 비구니 사찰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청룡사는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역사의 흔적을 안게 되었습니다. 당시 청룡사는 동대문 밖에 위치해 있어 왕실의 여인들이 주로 머무는 사찰이 된 것입니다. 고려의 마지막왕 공양왕의 혜비가 청룡사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고, 또 이성계의 딸 경순공주도 청룡사에서 비구니가 되었습니다. 이성계는 아들 이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으로 어린 두 아들과 사위를 잃었는데, 그때 과부가 된 딸 경순공주의 머리를 직접 깎아주고 청룡사로 보냈다는 일화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후 단종이 어린 나이에 영월로 유배되어 사사당했을 때 단종의 부인이었던 정순왕후 역시 청룡사 옆 정업원이란 곳에 머물며 청룡사에서 불심을 키웠다고 합니다. 이때 정순왕후는 천에 염색을 해서 팔며 생계를 유지했는데, 청룡사 위 비우당 뒤에 정순왕후가 염색을 했다는 자주동샘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청룡사에는 지금도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 비석이 있습니다. 이는 영조가 친히 글을 썼다는 영조의 친필 비석으로,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는 정업원 옛터라는 뜻입니다. 영조는 단종을 위해 죽음을 당한 사람들을 모두 복권시켰는데, 이 청룡사에 와서 정순왕후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친히 비문을 썼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 정순왕후가 살던 정업원 자리가 이곳인지는 확실치 않다고 합니다. 정업원구기비는 청룡사 화장실 계단을 내려가 오른쪽 작은 문을 열고 나가면 볼 수 있는데, 비각 안에 있어 비석을 직접 볼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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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룡사 정업원구기 비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