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종묘와 창경궁에 다녀왔습니다.

토요일이고 날도 그리 춥지 않았는데, 종묘는 여전히 한적하고 아늑하더군요.

종묘는 조선 왕실의 신주를 모신 곳이니 엄숙해야 하는 곳입니다.

그런 종묘를 아늑하다면 불손하긴 하지만, 그래도 제겐 아늑하게만 느껴지네요.

창경궁까지 돌아보고 좀 걷고 싶어서 무작정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종로3가에서 보도 바닥에 붙어 있는 종이를 하나 보았습니다.

 

짜장면 맛있는 집

4,000

 

이런! 이렇게 인간미 확 풍기는 싸구려 광고를 하는 집이 아직도 있다니!

그 길바닥 광고를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화살표 방향으로 몸을 틀게 되더군요.

글쎄요

요즘에도 이런 후진 꼬드김에 금방 넘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걸 저는 그때 알았습니다.

바닥에 붙여 놓은 A4 용지, 짜장면 맛있는 집 4,000

 

화살표는 좁고 우중충한 골목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옛날 대포집 골목처럼 작은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이었습니다.

장군의 아들 영화 포스터나 시골 읍내 성인 나이트클럽 광고지가 붙어 있으면 딱 어울릴 그런 골목이었습니다.

쭈뼛거리며 그 골목으로 들어가니 광고의 주인공인 중국집이 있었습니다.

 

()

 

그 중국집의 이름이었습니다.

홍콩반점이나 북경반점 아니면 비룡반점, 뭐 이런 이름이 아니라

고혹적인 여인의 작은 카페가 떠오르는 그런 이름이었습니다.

그 집 내부는 홍콩반점이나 북경반점이나 비룡반점이라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집이었습니다.

짜장면 맛도 그냥그냥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4,0000원짜리 짜장면 한 그릇으로 추억을 건져 올렸습니다.

어린 시절 서울 어디에나 있던 골목, 그리고 그 골목에 있던 짜장면집

그런 집들에서 아주 맛있게 짜장면을 먹었던 기억.

그 집에서 제가 젓가락으로 집어 올렸던 것은 짜장면이 아니라 옛 추억이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즐거웠습니다.

추억은 사람을 미소 짓게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추억이 엄혹한 현실을 버텨줄 힘이 될 순 없지만

잠시나마 미소 짓게 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던 하루입니다.

고혹적인 여인의 작은 카페보다 고마웠던 이름으로 기억할 것 같습니다.

 

짜장면 맛있는 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