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반데기에 관한 시시한 상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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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전에 하염없이 올레길을 혼자 걸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송악산 기슭에 앉아 형제섬을 쳐다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늘 먼 데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외로운 법인데난 왜 이렇게 먼 데를 떠돌아다니는 걸까.

그로부터 5년쯤 뒤에 생각을 고쳤습니다.

먼 데를 그리워해서 외로운 게 아니고, 외로워서 먼 데를 그리워하는 거라고.

그리고 다시 5년이 지난 지금은 생각이 또 바뀌었습니다.

그리움이나 외로움이나 같은 것이구나. 이란성 쌍생아쯤 되는 거겠지.

아무튼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크건 작건 마음 속에 외로움이나 허전함 같은 상실 또는 결여 같은 걸 품고 있는 사람이겠죠.

 

얼마 전에 안반데기에 갔다가 불쑥 그 외로움이 느껴졌습니다.

아니 제가 외로웠다기보다는 안반데기가 외로워 보였습니다.

하늘과 맞닿아 있는 봉우리마다 잔물결처럼 고랑을 만들고

고랑 옆 이랑에는 시금치만한 어린 배추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물결처럼 일렁이는 고랑을 보는 순간

안반데기가 하늘에 떠 있는 섬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였겠죠. 안반데기가 외롭게 보였던 것은.

 

그리고 또 있습니다.

해발 1,000m가 넘는 이 하늘 같은 땅까지 떠밀리듯 올라와서

하늘에 불을 놓아 땅을 일군 화전민들의 척박한 삶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나무 뿌리를 걷어내고 돌을 치우고 소처럼 땅을 갈아서 밭을 만들었겠죠.

그 돌을 모아 작은 성처럼 만들어 놓은 곳이 안반데기의 멍에전망대입니다.

그래도 다시 또 멍에전망대에 서서 외로운 안반데기를 바라보았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하늘 가까이에서 삶을 꾸려야 하는구나

 

여행을 다니다가 갑자기 외로움과 마주치게 되면

저는 왠지 그곳에는 다시 가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8월에 안반데기 여행이 잡혀 있으니 안반데기에 또 가게 되겠죠.

그래도 8월의 안반데기는 풍성한 고랭지 배추로 가득 차 있을 테니

5월의 안반데기처럼 외롭진 않을 겁니다.

봄처럼 싱그러운 풍경이 펼쳐져서

하늘에 떠 있는 외로운 섬이 아니라

하늘에 펼쳐진 초록빛 정원 같아 보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