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차분해진다는 것은

 

 

어제는 제천의 배론성지에 다녀왔습니다. 일부러 배론성지를 찾아나선 길은 아니었습니다. 본래 예정은 충주의 종댕이길을 걸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종댕이길을 걷다가 도중에 그만두고, 예정에도 없던 제천의 배론성지로 훌쩍 넘어갔습니다.

종댕이길은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걷기 좋은 길은, 비록 길이 지루하거나 힘들더라도, 제 나름의 개성이 있어야 합니다. 숲에 특징이 있거나, 탁 트인 풍경을 안고 있거나 아니면 이야기 거리가 있거나... 그러나 종댕이길은 그저 맹숭맹숭하기만 했습니다. 더 걸으면 전망대도 있고 구름다리도 있다는데 저희 일행은 초입부터 맥이 빠지더군요. 모두 난감해하고 있을 때 임시연 님이, 그냥 한번 던져보는 듯한 말투로 그러더군요

 

그만 걷고 오랜만에 배론성지나 가볼까요. 멀지도 않은데.

 

그렇게 해서 배론성지로 가게 되었습니다. 계획이란 게 본래 바뀌기 쉬운 법이지만. 여행 계획은 가끔 이렇게 완전히 어긋나기도 합니다.

 

거의 십 년만에 다시 찾아간 배론성지는 여전히 맑고 단아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매력도 여전했습니다. 한 시간 남짓 배론성지를 거닐며 마음이 꽤 편안해졌던 것 같습니다. 요즘 가슴에 큰 돌덩어리 하나를 품고 사는 것처럼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는데, 어제 배론성지에 다녀온 뒤로 한결 몸도 마음도 가볍습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건 어쩌면 어지러운 마음을 다시 리셋시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두려음도, 애정도 미움도, 아쉬움도 회한도 모두 지워 버리고 마음을 초기화시키는, 그런 상태 말입니다. 이런 상태는 아주 소중합니다. 이런 텅 빈 상태에서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요. 비어있음이 바로 차분함의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염되었던 마음을 다시 깨끗하게 정화시켜 주는 힘, 그리하여 이 혼탁한 세상에서 다시 제 갈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게 해주는 힘, 그런 힘이 바로 차분함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혹시 감당키 힘들 정도로 마음이 어지럽다면, 배론성지에 한번 다녀오시는 것도 마음을 진정시키는 좋은 방법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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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론성지>

 

오늘밤엔 한일전 축구가 있습니다. 무조건 일본을 이기야 한다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입니다. 무조건 일본을 이겨야 한다는 생각은 무모하고 위험한 생각입니다.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감정적인 인간인 저는 어쩔 수 없이 그 '무조건'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국가대표 축구팀 화이팅! 무조건 이겨라!!

축구 때문에 저는 지금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축구를 보며 무엇을 할까? 건강을 위해 실내 자전거를 타야 한다는 마음과 치맥과 함께 신나게 응원을 하자는 마음, 이렇게 두 개의 마음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이 두 마음이 아까부터 서로 눈을 흘기더니 급기야 멱살잡이를 하고 있네요. 그러자 어디선가 또 다른 마음이 나와서 그럴싸한 중재안을 내놓습니다.

 

전반전엔 자전거 타고 후반전에 치맥을 하는 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