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도란?

 

부도는 스님들의 사리를 봉안한 탑이다. 스님들이 입적하면 다비식을 통해 사리를 얻고 사리를 모신 탑이 부도이다. 기록에 의하면 삼국시대에도 부도가 있었다고 하는데 남아 있는 것은 없다. 현존하는 부도는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의 부도가 가장 오래된 부도이고 시기가 집중적으로 부도가 세워진 시기이기도 하다.

통일신라 말기에 부도가 많이 세워지고 걸작이라 불리는 부도가 나온 것은 선종의 유입과 깊은 관계가 있다. 당시 선종의 도입되면서 구산선문이 개창되었고, 선문 개산조들의 부도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부도에는 다양한 조각이 새겨지고, 부도 옆의 부도비에는 당시 최고의 문장가가 스님의 업적을 찬양하고 당대 최고의 문장가가 글을 써서 부도비에 새겼다. 그러므로 부도와 부도비는 당시 최고의 조각품이자 당시의 문학과 서체를 있어 고미술이나 역사학계의 귀중한 자료라 있다.

 

2. 부도의 구조

 

부도의 구조(여행편지).jpg 부도 역시 탑의 일종이므로 탑과 같이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구성된다. 탑과 다른 점은 탑에 비해 기단부가 크고 화려한 반면 탑신은 단층으로 단순한 편이고 상륜부 역시 불탑에 비해 간략한 편이다. 기단부는 대개 삼층으로 구성되는데 이를 각각 상대석, 중대석, 하대석이라 한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으로 구성된다.

 
















3.
부도의 형태

 

통일신라 말기에 부도가 많이 만들어지면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부도도 많은 변화를 겪는다. 부도의 형태는 대략 다음과 같다.

 

1) 팔각원당형 부도

쌍봉사 철감선사탑(여행편지).jpg 통일신라 말기에 등장한 부도들이 대부분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 부도이다. 전체적으로 면이 팔각을 이루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기단부나 탑신 그리고 상륜부의 평면들이 거의 모두 팔각으로 되어 있다. 고려시대까지도 형태의 부도가 많이 조성되었다. 원당(圓堂)이라는 말은 중간에 원형이 일부 들어갔기 때문에 들어간 같은데, 의미는 없는 같다. 팔각원당형 부도를 단순히 팔각당형 부도라 부르기도 한다.


왼쪽 사진은 쌍봉사 철감선사탑으로 철감선사의 부도이다. 팔각원당형 부도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부도로, 섬세하고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 부도이다. 사자, 가릉빈가, 사천왕, 비천상 등의 조각수법이 뛰어나고 탑신부의 옥개석에는 기와골이 섬세하고 조각되었는데, 기와 끝부분에 막새기와까지 표현되어 있다.  










2)
석종형 부도

신륵사 보제존자 부도(여행편지).jpg 
부도의
탑신이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팔각원당형 부도에 비해 수법이 단순하다. 고려시대에 등장해 조선시대에 많이 만들어진 형태이다. 신륵사 나옹화상탑과 통도사 금강계단 사리탑이 대표적인 석종형 부도의 형태를 하고 있다. 위의 사진은 신륵사 보제존자석종이라 불리는 나옹화상의 부도이다. 석종형 부도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부도이다.

 

3) 이형 부도

방형부도와 구형부도(여행편지).jpg 
우리나라
부도는 주로 팔각원당형이나 석종형 부도이다. 그러나 외에도 사각형의 모양을 닮은 방형 부도가 있고, 반구형 부도 변형된 형식의 부도들이 있다. 이런 변형된 형태의 부도들은 주로 고려시대와 신라시대의 부도들이다. 위 사진의 맨 왼쪽 부도가 방형부도이고 그 옆에 늘어선 부도가 원형 부도이다.

 


4.
부도의 변천 과정

 

1) 통일신라의 부도

염거화상탑(여행편지).jpg 앞에서 말한 것처럼 통일신라 말기에 세워진 많은 부도들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부도들이며, 이는 선종의 유입과 관계가 깊다. 우리나라에 선종을 처음 도입한 사람은 도의선사이다. 그러나 당시 도의선사는 경주의 세력층에게 배척되어 강원도 양양의 진전사에 머물며 선종을 전파했다. 그리고 도의선사의 제자였던 염거화상은 강원도 억성사에 머물며 선종을 알렸다. 그후 보조국사 체징이 염거화상의 법맥을 이어받아 장흥의 가지산 아래 보림사를 창건해 구산선문 중의 하나인 가지산문을 열었다.

염거화상의 부도인 염거화상탑(국보 104호, 왼쪽 사진) 844(문성왕 6) 조성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가장 오래된 부도로 기록되었다. 또한 부도는 통일신라 부도의 전형적인 형태인 팔각원당형의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팔각원당형 부도의 원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도의선사가 머물던 양양 진전사지에도 부도 기가 있다. 부도는 기단부가 완전한 탑의 기단부 모양을 하고 있고 탑신부만 부도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탑에서 부도로 옮겨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과도기의 부도인 것이다. 부도를 도의선사의 부도로 추정하고 있는데, 뒷받침할 만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만일 부도가 도의선사의 부도라면 부도가 염거화상탑보다 시기적으로 앞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부도가 되는 것이다.

연곡사 동부도(여행편지).jpg 당시에 조성된 부도로는 화순의 쌍봉사 철감선사탑, 남원의 실상사 증각대사응료탑과 수철화상 능가보월탑, 장흥의 보림사 보조선사창성탑, 곡성의 태안사 혜철선사탑, 문경의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 연곡사 동부도(왼쪽 사진) 등이 있으며, 이중 쌍봉사 철감선사탑과 연곡사 동부도는 가장 아름다운 팔각원당형 부도로 꼽히는 부도의 걸작이다.

이런 전형적인 팔각원당형 부도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를 겪게 된다. 통일신라가 쇠약해진 9세기 말에는 기단부의 변화가 일어나는데, 기단부의 중대석이 길어진다거나 또는 모양을 본뜬 모습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여주 고달사지의 원감국사탑이나 양양 선림원지 부도에서 이런 형태를 있다.

 











2)
고려시대의 부도

지광국사 현묘탑1(여행편지).jpg 고려시대 초기에는 통일신라의 부도를 그대로 계승하여 팔각원당형 부도가 계속 조성된다. 통일신라의 부도와의 차이점은 탑신 옥개석의 부분이 좀더 위로 치켜 올려진 정도라 한다. 그러나 후기로 가면서 부도가 점차 길어지기 시작하는데, 이는 기단부의 중대석이 길어지고 탑신부 옥개석이 경사가 급한 뾰족한 형태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나 탑과 마찬가지로 고려시대의 부도 역시 통일신라의 부도에 비하면 조형미가 떨어지는 편이라 있다.

고려시대의 부도로는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 홍법사 진공대사탑, 고달사지 원종대사혜진탑, 강릉 굴산사지 부도, 군위 인각사의 보각국사 부도, 공주의 갑사 부도, 서산 보원사지의 법인국사보승탑 등이 있다.

 

왼쪽 사진은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으로 부도라기보다는 탑에 가까운 형태이다. 이형 부도로 할 수 있는데 이런 이형 부도로는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부도이다. 현재 경복궁에 있다.





3)
조선시대의 부도

무학대사 부도(여행편지).jpg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불교가 억압을 받으면서 부도 역시 간결화된다. 조선 초기에는 팔각원당형 부도가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점차 형태가 무너지고 주로 석종형 부도가 많이 만들어졌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팔각원당형 부도로는 양주 회암사지의 무학대사탑(위 사진)이 있다. 부도를 보면 탑신이 북을 엎어놓은 것처럼 불룩 솟아 있고, 기단부와 옥개석도 과거에 비래 굵고 투박해졌음을 느낄 있다. 부도에 새겨진 문양도 섬세함이 많이 떨어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팔각원당형 부도는 더욱 단순화된다. 탑신은 모양이었다가 다시 모양으로 단순해지고 기단과 옥개석도 극도로 단순하게 변한다. 조선시대 부도의 특징은 석종형 부도가 많다는 점인데, 조선 초기에 석종형 부도의 걸작이 등장한다. 바로 나옹화상의 부도인 신륵사 보제존자석종(아래 사진)이다. 석종형 부도는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형태를 자랑하는 부도로 석종형 부도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부도로 손꼽힌다.

신륵사 보제존자 부도(여행편지).jpg 조선시대의 부도가 이렇듯 간결하게 변한 것은 불교가 탄압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워낙 많은 부도가 만들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려시대까지는 명망이 높은 고승(高僧)들만이 부도를 조성했으나,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어떤 까닭인지 일반 승려들도 부도를 조성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부도의 수가 크게 늘었고 부도 조성에도 공력을 들이지 않았던 같다. 일반 승려들의 부도가 늘어나면서 사찰에서는 부도밭을 조성하기 시작해서 대부분 사찰의 부도밭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실제로 부도밭에는 팔각원당형 부도보다는 석종형 부도가 훨씬 눈에 많이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