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걷기 총정리

 

 

한양도성 걷기

 

한양도성 걷기는 내사산(남산, 낙산, 북악산, 인왕산)인 네 개의 산을 넘는 코스로, 네 번에 걸쳐 걷는 것이 좋습니다. 또 한양의 남대문이자 정문이었던 숭례문에서 시작하는 것이 의미가 있겠죠. 숭례문에서 시작해 한양도성을 한 바퀴 돌 때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것이 좀 수월합니다. 따라서 서울 성곽 걷기는 네 번에 걸쳐 걷되,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남산 코스, 낙산 코스, 북악산 코스, 인왕산 코스, 이렇게 잡아서 걷게 됩니다. 걷기에 자신 있는 분은 두 번에 걸쳐 걸어도 좋습니다. 두 번에 걸을 때는 남산과 낙산을 한 번에 그리고 북악산과 인왕산을 한 번에 걷는 것이 좋습니다. 

 

이 산들은 모두 그리 높지 않아 걷기에 힘들지는 않습니다. 다만 북악산과 인왕산은 높진 않지만 뾰족한 형태의 산이어서 경사길이 있습니다. 특히 인왕산길은 바위가 많아 산행에 가까운 길로, 반드시 등산화를 신는 것이 좋습니다.

 

한양도성 걷기 코스는 울창한 숲길을 걷기도 하고, 도심 한복판을 걷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서울 속의 자연과 도심을 두루 걸으며 서울에 공존하고 있는 과거와 현재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한양도성을 걸으며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서울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서울의 자랑스러운 모습과 안타까운 모습이 성곽길에 모두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 한양도성을 걸을 때는 찬찬히 주변의 유적과 볼거리들을 음미하며 걷는 것이 좋습니다. 아래 자료를 참조해서 걸으시면 됩니다.

 

 

한양도성 남산길, 볼거리 많은 아기자기 성곽길

한양도성 낙산길, 역사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한양도성 북악산길, 숲길이 아름다운 한양도성의 북쪽길

한양도성 인왕산길, 바위산을 넘어 역사의 흔적을 보는

 

 

한양도성의 축성

 

한양도성은 옛 조선의 도읍인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입니다. 예전에는 보통 서울성곽이라 불렀는데 2011년 한양도성으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총 길이는 약 18km로 지금의 서울 시내권을 감싸고 있습니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뒤 경복궁과 종묘, 사직단을 세운 뒤 곧장 한양도성을 축성했습니다. 1395(태조 4) 9월에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해 성곽의 자리를 정하고, 서울을 감싸고 있는 내사산(內四山)인 북쪽의 백악산(북악산), 동쪽의 인왕산, 남쪽의 목멱산(남산), 동쪽의 낙산을 잇는 서울 성곽의 축조에 들어갔습니다. 그해 겨울부터 봄까지 1차 공사가 진행되었고, 다시 그 이듬해 겨울에 2차 공사를 벌여서, 두 번에 겨울에 걸쳐 18km에 이르는 서울 성곽을 완성했습니다. 이 공사에 동원된 연인원이 20만명에 이른다고 하니 얼마나 대공사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내사산인 북악산과 인왕산 그리고 남산과 낙산을 잇는 한양도성이 완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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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양도성> 

 

사대문과 사소문

 

당시 한양도성에는 네 개의 큰 문인 사대문과 네 개의 작은 문인 사소문을 두었습니다. 사대문은 남쪽의 숭례문(崇禮門), 동쪽의 흥인문(興仁門), 서쪽의 돈의문(敦義門, 현재는 없음), 북쪽의 숙청문(肅淸門, 뒤에 숙정문肅靖門으로 이름이 바뀜)이었고, 사소문은 동북의 홍화문(弘化門, 뒤에 혜화문惠化門으로 이름이 바뀜), 동남의 광희문(光熙門), 서북의 창의문(彰義門, 보통 자하문이라 부름), 서남의 소덕문(昭德門, 현재는 없음)이었습니다.

이중 동쪽의 흥인문(興仁門)만 둥근 옹성을 쌓아 성문을 보호했고, 이름에 ‘지()’ 자를 넣어 흥인지문(興仁之門)이라 불렀습니다. 또 북쪽의 숙청문은 북악산에 있는 문으로, 평소에는 사람이 드나들지 않아 사대문임에도 문루를 작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성곽은 돌로 쌓은 석성과 흙으로 쌓은 토성이 섞여 있었으며, 구역을 나눠 각각 지방에 책임을 맡겨 그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맡은 구역의 성곽을 축조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각 지방 사람들이 쌓은 구간에는 성벽에 그 지방의 이름을 새겨놓아 책임을 명확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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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원된 숭례문> 

 

성곽의 보수

한양도성은 그후 세종 때인 1422(세종 4)에 성곽을 크게 보수했습니다. 이때 흙으로 쌓은 토성 부분을 모두 석성으로 바꾸고 성곽의 높이를 높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때 성곽의 윗부분인 여장(女墻)을 만들고 여장에 총안을 만드는 등 좀 더 발전된 성의 형태를 띠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숙종 때인 1704(숙종 30)부터 시작해 5년간에 걸친 대대적인 성곽 보수가 한 차례 더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양도성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에 의해 많은 부분이 망실되었고 또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크게 파괴되어 많은 부분이 없어졌는데, 최근에 한양도성의 복원이 시작되면서 구간별로 서서히 옛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한양도성 18km 중 복원된 구간은 약 10km, 복원이 가능한 구간은 약 2.5km 정도라 합니다. 나머지 구간은 이미 개발이 많이 진행되어 복원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축성 방식의 차이

 

한양도성은 처음 태조가 축성하고 약 20여년 뒤에 세종이 크게 보수하고, 다시 약 300년 뒤에 숙종이 대대적인 보수를 했는데, 각 시기별로 축성 방식이 달라 그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먼저 태조 때 처음 쌓은 성곽은 가공하지 않은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해서, 그냥 막돌을 쌓아놓은 듯한 느낌이 드는 좀 조악한 형태입니다. 성벽 아래쪽 기초석에 길고 큰 돌을 많이 썼다고 합니다. 또 세종 때 쌓은 성곽은 돌을 그런대로 다듬어서 썼으며 아래에는 큰 돌을 중간 높이 위로는 점차 작은 돌을 쌓았습니다. 숙종 때 성곽은 가장 구분하기 쉬운 성곽으로 모든 돌을 반듯하게 사각형으로 다듬어 빈 틈이 없을 정도로 잘 들어맞게 쌓았습니다. 돌들이 모두 반듯한 사각형이고 돌의 규모도 커서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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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별 축성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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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 때와 숙종 때의 성곽. 사진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큰 사각형 돌을 쌓은 부분이 숙종 때의 성곽입니다. 그 양쪽으로 돌을 다듬긴 했지만 작은 돌을 써서 쌓은 구간이 세종 때 성곽입니다.>   

 

여장과 총안

 

세종 때 성곽을 보수하면서 여장과 총안을 만들었는데, 여장이란 성벽 위에 쌓은 담으로 가운데 사각형의 구멍을 냈습니다. 이 구멍을 총안이라 부르는데 전투 시 이 구멍을 통해 활이나 총을 발사하는 용도였습니다. 가운데 있는 경사가 급한 구멍이 가까이에 있는 적을 쏘는 근총안이고 양쪽에 있는 경사가 완만한 구멍은 먼 곳에 있는 적을 쏘는 원총안입니다. 또 여장에는 지붕처럼 생긴 옥개석을 얹어 빗물이 여장을 손상시키는 것을 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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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밖에서 보면 성벽 위에 담처럼 얹혀진 부분이 여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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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안에서 본 여장. 가운데 사각형 구멍이 총안입니다. 성벽 안쪽은 지대가 높아서 바로 여장 옆을 걷게 됩니다.>  

 

각자석과 암문

 

서울 성곽에는 글씨가 새겨진 돌들이 있는데, 이 돌들을 각자석(刻字石)이라 합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서울 성곽을 쌓을 때 각 지방의 책임 소재를 밝히기 위해서, 그 구간의 책임자와 공사 구간, 공사 시기 등을 돌에 새겨놓았는데, 이 돌이 각자석입니다. 암문은 사대문과 사소문 외에 성 안팎을 드나들 수 있는 비상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상시에 몰래 드나들 수 있게 만든 문이어서 암문이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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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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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문>   

 

관련 자료,  한양도성의 사대문과 사소문

 

남대문 숭례문(崇禮門)동대문 흥인지문(興仁之)북문 숙정문(肅淸門), 서대문인 돈의문은 현재 없습니다.

남소문 광희문(光熙門)동소문 혜화문(惠化門), 북소문 창의문(彰義門), 서소문인 소덕문은 현재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