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산 해미읍성

천주교 박해의 역사가 서린 조선의 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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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미읍성 진남문> 

 

충남 서산의 해미읍성은 서산시 해미면에 자리잡은 읍성입니다. 해미면은 작은 면인데 커다란 읍성이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해미는 본래 조선시대에는 꽤 컸던 고장으로 이 일대의 중심지역이었다고 합니다. 조선 태종 7(1406)에 정해현과 여미현을 통합하면서 두 현의 이름에서 한 자씩을 따서 해미(海美)라는 지명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태종 14(1413)에 덕산에 있던 충청병마절도사의 병영을 해미로 옮겨, 해미가 충청도의 군사령부가 되었습니다. 태종은 충청병마절도사영을 해미로 옮긴 뒤 해미읍성을 쌓기 시작해 세종 3(1421)에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이 기록에 의하면 해미읍성은 600년이 되어가는 오랜 역사를 가진 성입니다.

해미읍성은 성의 둘레가 1.8km, 넓이가 2만 평 정도인 꽤 큰 성입니다. 성벽이 잘 보전되어 있고 남문이자 정문인 진남루와 동문과 서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해미읍성에는 동헌이 일부 복원되어 있을 뿐 사람이 살지는 않습니다. 1963년 해미읍성을 사적 116호로 지정하면서 성 안에 있던 민가와 학교를 철저했다고 합니다.

 

해미읍성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이순신 장군이 근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해미읍성은 아픈 역사를 품은 성이기도 합니다. 1866년 흥선대원군이 대규모 천주교 탄압인 병인박해를 일으켰을 때 충청도의 천주교인들이 잡혀와 죽음들 당한 곳이 이 해미읍성입니다. 이때 수많은 천주교도들이 해미읍성에서 죽었는데, 지금도 해미읍성의 한가운데 있는 호야나무가 그 산 증인이라고 합니다. 당시 호야나무 옆이 옥사였는데 천주교도들을 이곳에서 고문하고 호야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였다고 합니다. 또 해미읍성의 서문 밖에 있는 넓적한 돌에 천주교도들을 패대기쳐서 죽이기도 했고 해미읍성 옆 해미천에 구덩이를 파고 산 채로 생매장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현재 서문 밖 무참한 처형이 이루어졌던 곳에 순교헌양비가 서 있습니다. 해미읍성이 이런 천주교 탄압의 현장이었기에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이 해미읍성을 찾아가 미사를 집전하기도 했습니다.

 

서산의 해미읍성은 조선시대 읍성의 형태를 잘 보전하고 있고 또 아픈 천주교 탄압의 역사를 간직한 곳입니다. 서산을 여행할 때 한 번쯤 가 볼만한 곳입니다.

 

해미읍성 : (041)660-2540,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16, 해미면 남문2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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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안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아 시원한 공원 분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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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헌. 성 안에는 동헌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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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밖 천주교도들이 처형되었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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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안 천주교도들이 처형되었던 회화나무입니다.>    

 

 

대중교통

 

시외버스를 이용해 서산까지 간 뒤 서산버스터미널에서 해미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됩니다.

 

 

식사

 

해미읍성 앞에 음식점들이 있습니다. 이중 읍성뚝배기가 소머리국밥(9,000)과 설렁탕(8,000)을 잘하는 집으로 알려져 있고, 영성각이 짬뽕으로 유명한 집입니다.

 

읍성뚝배기 : (041)688-2101,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327-1

영성각 : (041)688-2047,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169-1, 해미면 남문1 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