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산청 덕천서원과 산천재

조선의 대유학자 남명 조식의 흔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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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천서원>


경남 산청의 덕천서원과 산천재는 조선 중엽의 대유학자였던 남명 조식 선생의 흔적으로, 산천재는 조식 선생이 말년을 보낸 작은 집이고, 덕천서원은 선생이 돌아가신 후 선생의 제자들이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설립한 서원입니다. 산천재와 덕천서원은 약 1.6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은 임진왜란 직전의 인물로, 퇴계 이황 선생과 동시대를 살았습니다. 남명 선생은 당시 이념적이고 추상적인 성리학을 벗어나 현실적인 문제를 중시했던 성리학자였습니다. 임금과 조정의 폐단에 엄중한 상소를 올렸지만, 한 번도 벼슬을 하지 않고 산림처사(山林處士)로 살며 학문과 제자 육성에 힘을 쏟았습니다. 선생의 학풍을 이어받은 선생의 제자들은 임진왜란이 터지자 의병장으로 나서 큰 활약을 펼쳤습니다. 이는 현실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선생의 뜻을 이어받은 행동이었습니다. 남명 선생과 퇴계 선생은 동인이 된 영남학파라는 큰 사림학파의 두 영수였는데, 임진왜란이 끝난 뒤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질 때 퇴계 선생의 제자들이 남인으로 남명 선생의 제자들이 북인으로 갈라졌습니다.

 

산천재(山天齋)는 선생이 61세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약 10년간 거처하던 단출한 집으로, 선생의 검소하고 담백한 풍모를 느낄 수 있는 작은 집입니다. 집 앞에는 매화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남명 선생이 직접 심으신 매화나무로 알려져 있습니다.

덕천서원(德川書院)은 선생이 돌아가신 4년 뒤에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선생의 제자들이 설립한 서원입니다. 서원은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 서재와 강학당이 있는 소박한 규모이고, 강학당 뒤에 선생의 사당인 숭덕사(崇德祠)가 있습니다. 서원 앞에는 수백 년은 됐을 커다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길 건너편에는 세심정(洗心亭)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습니다. 세심정은 남명 선생의 제자들이 덕천서원을 세울 때 같이 세운 정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산천재 : 경남 산청군 시천면 사리 392-3

덕천서원 : 경남 산청군 시천면 원리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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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천서원 사당 숭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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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천서원 앞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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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천서원 앞 세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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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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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천재와 매화나무>


 

대중교통

 

시외버스로 산청까지 간 후 산천재와 덕천서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됩니다. 산천재를 본 후 덕천서원까지는 걸어가도 됩니다.

 

 

식사

 

덕천서원에서 멀지 않은 덕산에 큰 시장과 음식점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