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

 

 

진달래(사진관).jpg


어제는 날이 좋아서 아내와 우면산에 올라갔습니다.

오랜만에 올라갔더니 어느새 듬성듬성 진달래꽃이 피었더군요.

사진은 어제 우면산 산허리 쉼터에 핀 진달래꽃입니다.

볕이 잘 드는 곳이어서 산고양이가 새끼 네 마리를 낳아 키우고,

가끔 산에 올랐던 어르신들이 꾸벅꾸벅 졸기도 하시는 곳이죠.

진달래가 그런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고 일찍 꽃을 피웠습니다.

 

요즘은 완연한 봄의 상징이 벚꽃이죠.

하지만 예전에는 진달래꽃이 완연한 봄의 상징이었던 것 같습니다.

옛 시인들의 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꽃이 바로 저 진달래꽃이 아닌가 싶은데

시 속의 진달래꽃은 봄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겨우내 허기졌던 아이들이 진달래꽃을 따먹기도 하고

봄에 만나 사랑하게 된 여인을 진달래꽃으로 표현하기도 하죠.

가끔은 4월 학생 혁명이나 5월 광주 혁명의 상징으로 진달래꽃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5월 광주에 피는 붉은 꽃은 진달래꽃이 아니고 철쭉꽃이겠죠.

그러나 진달래꽃으로 가장 유명한 시에서 시인은 이별의 슬픔을 노래합니다.

시인은, ‘나 보기가 역겨워떠나는 님의 발 밑에 진달래꽃을 뿌리겠다고 했습니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이 구절은 아마 떠나는 님에게 차마 말하지 못한 시인의 마음이겠죠.

그리고 시인은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다는 억지스런 거짓말로 시를 마무리했습니다.

소월의 님은 하필이면 소생의 계절인 봄에 떠났는지

희망의 노래를 불러야 할 봄에 소월에게 아픔의 노래를 부르게 했는지

봄은 떠나갔던 님도 되돌아오는 계절이 되어야 마땅한데 말이죠.

아무튼 시인들에게 봄을 상징하는 꽃은 벚꽃이 아니라 진달래꽃인 모양입니다.

 

오늘 우면산에서 진달래꽃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봄이 왔구나.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소월의 시, ‘진달래꽃이 떠올랐구요.

그러나 우면산 여기저기에 피어 있던 진달래꽃은 슬프지도 화사하지도 그리고 상징적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여리고 따사로웠을 뿐입니다.

매화를 봄의 전령사라고 흔히 말하지만 이는 성급한 사람들의 말입니다.

진달래가 꽃을 피워야 비로소 봄입니다.

올해 진달래의 첫 느낌처럼 올 봄도 따사롭기를 바랍니다.

더 화사할 것도 없이, 더 아름다운 것도 없이, 더 상징적일 일도 없이

올 봄은 그저 산 속에 여리게 피어난 진달래꽃만큼만 따사롭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작은 온기를 조금씩이라도 골고루 나누어 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