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다! 복이나 받아라~ 지리산 만복대

 

 

35만복대길(사진관).jpg


어제는 지리산의 서북능선을 걷고 왔습니다.

성삼재에서 시작해 고리봉과 만복대를 넘어 정령치까지 약 7.3km를 걸었습니다.

그러니까 성삼재휴게소에서 노고단의 반대 방향으로 걸었던 거죠.

길은 지루했습니다.

우거진 숲길을 걷다가 시야가 트인 봉우리에 올라서면 지리산의 주능선과 서북능선을 보고

다시 숲길로 접어들고 다시 능선을 바라보고

이런 풍경이 반복되는 단조로운 길이었습니다.

특히 숲길에는 조릿대라 불리기도 하는 산죽이 유난히 많았는데 이 산죽길이 아직도 지겹더군요.

십 년 전쯤인가 혼자 순천의 조계산을 넘은 적이 있는데

끝없이 이어지는 산죽길에 멀미를 하며 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이후로 산죽길만 만나면 어지럼증이 도는 것 같습니다.

 

그런 길 5.3km를 걸어 만복대에 도착했습니다.

그리 길지도 않았고 또 심한 오르막도 없었는데 은근히 힘이 들더군요.

그런 길이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을 것 같은데 꽤 힘들게 느껴지는 길 말입니다.

만복대를 향해 걸으며 머리 속을 맴돌던 생각은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산봉우리 이름이 만복대(萬福臺)가 뭐람?

복 받으러 산에 오는 사람도 있나?

그런 생각을 하며 만복대 아래에서 만복대를 올려다보는 순간, 문득 만복대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뭐하러 여길 오는지 참. 아무튼 힘들게 왔으니 옛다! 복이나 받아라~

단조로운 풍경을 밟으며 지루하게 걸었지만 만복대 정상의 풍경도 여전히 비슷하더군요.

정상에 올라섰을 때 ~’하는 탄성이 나올 것도 없으니

그냥 복이나 받아가라는 의미에서 만복대라는 이름이 붙은 게 아닐까, 제 맘대로 생각했습니다.

 

여행편지에서 가끔 무념의 길이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길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길이 두로령이었죠.

뭐 풍경이라 해봐야 비슷비슷하고 길은 지루하고, 이런 길에 가끔 무념의 길이란 별칭을 붙입니다.

그렇다고 길고 지루한 길이 모두 무념의 길이 되는 건 아닙니다.

그런 길은 아예 찾아가질 않죠.

그 길 안에 무언가 매력이 있을 때, 보통은 설명하기 힘든 그 길 특유의 생동감이겠죠,

그럴 때 무념의 길이란 이름을 붙여 줍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제 걸었던 성삼재 만복대 정령치 코스는 무념의 길에 해당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네요.

음식도 어떤 것들은 숙성을 시켜야 맛이 풍성해지듯이

가끔은 여행도 며칠이 지나봐야 그 느낌이 무르익을 때가 있습니다.

며칠 지나고 나면 만복대 코스의 느낌이 조금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르죠.

하지만 뭔가 매력이 있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지루한 길을 다 걷고 임시연 씨와 두 말 없이 여행 진행에 합의했으니까요.

 

8월 말에 만복대 코스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조금은 힘들고 지루한 길이지만 시원한 지리산의 능선 풍경도 있고

또 지루하면서도 뭔가 매력이 있는 길인 것 같습니다.

그 매력은 저희도 여러분도 각자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땀은 흘렸지만 다행히 성삼재(1.102m), 만복대(1,437m), 정령치(1,172m)가 모두 고산지대에서 그리 덥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만복대에 올라가서 귀를 기울이시면, 만복대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들으실지도 모릅니다.

옛다! 복이나 받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