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의 다락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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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는 지리산 둘레길 3코스를 걷고 왔습니다.

몇 년만에 다시 찾아간 지리산 둘레길은 몰래 성형을 한 얼굴처럼

어딘가 모르게 같은 듯 다른 느낌이더군요.

일단 길 주위에 깔끔한 새 집 몇 채가 자리잡아서 예전만큼 자연스럽지는 못했습니다.

자연은 계절의 순환에 맞춰 태어나고 자라고 시들기를 반복하지만

사람의 구조물은, 물론 언젠가 시들겠지만 자연의 순환보다는 아주 느리게 시들어가죠.

그러니 여러 해 햇살에 달궈지고 비에 젖고 바람을 견디고 또 눈을 맞아서

세월의 흔적이 입혀져야 비로소 자연과 어우러지기 시작하죠.

아무튼 산 속의 새 집은 당분간 풍경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지리산 둘레길은 여전히 걷기에 즐거운 길입니다.

매동마을을 출발해 숲길을 지나 중황마을의 시원한 풍경을 따라 걷다가

다시 상황마을의 다락논을 보며 등구재를 넘어

소나무길을 휘휘 돌아 천왕봉을 마주보며 창원마을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전체적으로 길이 순하고 자연스러워서 마음 편히 풍경 속을 걸을 수 있는 길입니다.

이 날은 오랜만에 날씨도 화창해서 상쾌하게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이 날은 유난히 상황마을의 다락논이 눈길을 끌더군요.

파란 하늘 아래 초록빛 다락논이 더없이 싱싱해 보였습니다.

예전에는 다락논만 보면 늘 마음이 애잔했었습니다.

얼마나 살기가 힘들었으면 저리도 힘들게 산을 깎아서 논을 만들었을까

산비탈을 파내 편평하게 땅을 고르고

그 땅이 무너지지 않게 돌을 날라 축대로 땅을 버텨서 만든 논이 다락논입니다.

산비탈을 깎는 일도 무진 힘들었을 테고

또 돌을 날라 축대를 쌓는 일도 여간 힘들지 않았을 텐데.

어찌 그 힘든 일을 감당해 냈을까

다락논만 보면 그 논을 만든 사람의 결핍과 집념이 자꾸 떠올라

마음이 짠하기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날은 그 다락논이 싱그럽게 느껴지더군요.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다른 이유는 없었습니다.

단지 날씨가 화창하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요즘 계속 비가 오락가락하고 하늘도 우울해서 아마 화창한 하늘이 그리웠나 봅니다.

오랜만에 날씨가 화창하니 애잔해 보이기만 하던 다락논까지도 싱그럽게 보였던 것이죠.

날씨가 좋아야 여행이 즐겁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흐린 날에도 얼마든지 좋은 여행을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요즘은 계속되는 궂은 날씨 때문에 마음이 우울해지네요.

저처럼 날씨 때문에 마음이 가라앉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

모두 힘차게 기운 내서 일주일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날씨 또한 자연의 변화일 뿐이니 공연히 마음까지 적시진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