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가을 아침

 

 

우면산 조망(사진관).jpg


저는 오늘 아침 일찍 우면산에 다녀왔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창 밖으로 부슬부슬 비가 내리더군요.

아침도 먹지 않고 배낭 하나 둘러매고 얼른 산으로 갔습니다.

 

비에 젖은 산은 언제 가도 해맑고 싱그럽습니다.

그런 상쾌한 분위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죠.

그러니 비가 내리면 저는 주섬주섬 배낭을 챙겨서 산으로 갑니다.

사람도 없어 조용한 산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와 간신히 흘러가는 물 소리와

무언가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를 나누는 새들의 소리뿐입니다.

평소 같으면 우르르 몰려다니는 사람들의 거칠고 경박한 웃음소리가 산에 흥건한데

비 오는 날에는 오직 자연의 소리뿐입니다.

정상에 올랐을 때 잠시 비가 멈추면서 안개가 자욱해지더군요.

그리고 다시 그 안개가 살포시 걷히면서 사진 속의 풍경이 드러났습니다.

시야를 가득 메우던 안개가 걷히니

거짓말처럼 멀리 북한산까지 시계가 뻥 뚤리더군요.

마음이 차분해지고 또 시원해져서 깊이 큰 숨을 몇 번 내쉬었습니다.

 

추석 연휴는 잘 보내셨는지요?

이 인사로 편지를 시작하려 했었는데 이제야 적습니다.

사실 이런 안부를 묻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명절이 즐거운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모르지만

아마 많은 분들이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리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흐린 봄날 어느 오후의 무거운 일기처럼

그만한 우울이 또한 필요하다.

세상을 속지 않고 걸어가기 위하여

나는 담배를 끄고 누구에게든 신경질을 피우고 싶다.”

 

김수영 시인의 바뀌어진 지평선이란 시의 한 대목입니다.

격정의 삶을 살았던 분이니 누구에게든 신경질을 피우고 싶다는 말이

왠지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시인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우울이 쌓이면 어디에든 신경질을 부리고 싶죠.

하지만 그 신경질을 받아줄 사람이 없으니 함부로 신경질을 부릴 수도 없습니다.

저는 오늘 산에서 마음껏 신경질을 부리고 온 듯한 느낌입니다.

촉촉한 숲이, 신경질 부리는 저를 토닥토닥 품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추석이 지나고 비가 내리니 이제 곧 가을입니다.

산에서 내려오는데 임시연 씨에게 카톡이 오더군요.

강선계곡 가게에 물어봤는데 지금 곰배령 단풍 아주 좋다네요.

내일 곰배령 여행이 있으니 단풍 상황을 점검해 본 모양입니다.

그 카톡을 보고 더 기분이 맑아지더군요.

혹시라도 명절 때 마음 아픈 일이 있으셨던 분은

가까운 산에 올라가 훌훌 털어버리고 오시기 바랍니다.

가을은 병이 깊어지는 계절이니

가을이 오기 전에 마음을 깨끗하고 맑게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즐거운 마음을 가을을 맞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