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의 바람 이야기

 

 

40논골카페(엽서).jpg


두 주쯤 전에 동해시의 묵호항에 다녀왔습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옅은 건망증 같은 안개가 이리저리 흘러 다녀서

묵호는 오랫동안 잠들지 못한 사람의 우울한 표정을 닮아 있었습니다.

그 묵호항의 골목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작고 초라한 팻말이 하나 있었습니다.

팻말에는 누구의 시인지도 모를 짧은 시 한 편이 적혀 있었습니다.

 

'아비와 남편 삼킨 바람은 다시 묵호 언덕으로 불어와

꾸들꾸들 오징어 명태를 말린다

남은 이들을 살려낸다

그들에게 바람은 삶이며 죽음이며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간절한 바람이다.'

 

시를 읽는 순간 가슴이 턱 막혀 오더군요.

묵호의 바닷바람은 고기잡이 나간 아비와 남편을 삼키고

다시 묵호 언덕의 오징어와 명태를 말려 남은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 주었다는

삶과 죽음을 속수무책으로 바다와 바람에 의탁하고 살아야 했던 옛사람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짧고 담담하게 풀어낸 시였습니다.

 

팻말을 지나 묵호등대를 지나 바람의 언덕에 이르렀을 때

사진 속의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큰 아이는 어미의 치마자락을 붙잡고 작은 아이는 어미의 등에서 칭얼대는데

어미는 넋을 잃고 비와 안개에 젖은 바다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미의 옆에 초승달이 떠 있는 것을 보니

어미는 밤을 지새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양입니다.

고기잡이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것이겠죠.

아마도 남편은 돌아오지 못하고 남편을 삼킨 바람만 돌아와 어미의 아픔을 위로할 겁니다.

그 바람은 어미에게 지울 수 없는 한을 심어주고

다시 눈물을 닦을 수 있는 희망을 잉태해 주었을 겁니다.

 

그 어떤 의지할 것도 없었던 옛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사실 요즘도 묵호의 바람은 언제 어디서나 불어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마도 그 바람은 사람들에게

좌절과 희망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뒤엉켜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